• 최종편집 2025-05-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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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28일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침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마침내’란 말을 쓴 이유는, 그 동안 그가 이 상(賞)의 유력한 후보가 된 것만 해도 다섯 차례였기 때문입니다. 디카프리오는 아직 20대 초반(1974년 생)에 불과하던 1997년 영화 타이타닉(Titanic)으로 일약 신드롬을 일으키며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이전의 명성과 아이돌 이미지를 탈피하고 연기파 배우의 반열에 오르고자 나름 사투(死鬪)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작품 이름 그대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기 나흘 전, 한국 영화 한 편이 국내에서 개봉되었습니다(2월 24일). 「귀향(歸鄕)」입니다.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잡혀간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러나 제작비 부족과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난산(難産)을 거듭하다가 수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후원과 뜻있는 분들의 재능 기부로 14년 만에 ‘마침내’ 세상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영화는 여전히 험로(險路)를 걸었습니다. 상영관이 확보되지 않아 힘들게 태어난 작품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때 온라인(on-line) 청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원하는 관객들의 요청으로 상영관이 확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라져가던 「귀향」이 제목 그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개봉한지 열흘 만에 관객 100만을 돌파하고, 현재까지 누적 관객이 300만 명을 훌쩍 상회하는 기적을 배태(胚胎)한 채로 말입니다.
  「귀향」이 돌아오고 있는 동안, 「동주」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0대 꽃다운 나이에(1917년 생) 급사(急死)한 윤동주를 기리며 만든 영화입니다. 애당초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 제작비도 일반 상업 영화의 1/10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예산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주가 사망한 바로 다음 날인 2월 17일 개봉한 「동주」는 비록 「귀향」처럼 잰걸음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시구(詩句)처럼 어느새 100만이 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윤동주, 〈새로운 길〉, 1938). 마치 전 날 죽은 동주가 바로 그 다음 날 새로운 길을 걸어 돌아온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가만 보니 다시 돌아온 존재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 오지만은 않았습니다. 「귀향」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을 결코 잊지 않는 무언(無言)의 국민들 존재를 새삼 일깨워 주었습니다. 「동주」를 통해 우리는 시대를 향한 순결한 양심이 조용히 포효(咆哮)하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 디카프리오(DiCaprio)도 수상 소감을 통해 뜻밖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기후 변화는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딸을 위해, 탐욕의 정치로 소외된 약자들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많은 할머니들이 실제로는 귀향하지 못했습니다. 윤동주는 시로, 영화로만 우리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디카프리오는 환경운동가로 거듭났지만 부활은커녕 실제로는 죽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있는 실체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순간마다 끊임없이 만물을 갱생(更生)하고 계십니다(recapitulatio, Irenaeos).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a), 레버넌트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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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레버넌트(Reva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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