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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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한 그릇을 만든다는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는 그릇이 무엇인가이며 둘째는 그 그릇에 담겨있는 더러운 것은 무엇인지이며 셋째는 깨끗해진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릇이란 본래의 나를 말하며 ‘나’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더러운 것은 자기사랑과 세상 사랑이며, 깨끗해진 그릇에 담겨야 할 것은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사랑과 세상 사랑을 제거하지 않고 본래의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겠으며 그릇 속에 더러운 것들이 가득한데 어찌 그 그릇에 생명을 담을 수 있겠는가?
  그릇이라고 하는 나는 ‘영’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영이 진짜 사람이며 육체는 이 영을 싸고 있는 덮개이다. 영이 육체를 떠나면 육체의 생명도 끝나버리는 것이다. 이 본래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경에 ‘십자가에 육체와 정과 욕심을 못 박는다’라는 말씀처럼 세상에 태어나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 즉 눈에 보이는 것들, 태어나면서 생긴 자아, 명칭, 신분, 소유 등 모든 것을 버릴 때 본래의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를 만나는 그 순간은 자유와 독립의 순간이며 내가 사랑이며 기쁨과 환희인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머니 뱃속에서 한 번 태어나고 그 다음 내가 나를 낳는 순간이 이 때인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을 경험했다고 내 영이 생명 있는 산 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영은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담는 그릇인 것이다. 이 그릇에 생명이 담겨야 드디어 생명이 되는 것이다.
  내 영이 생명을 담는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더럽게 하는 자기사랑과 세상 사랑을 제거해야 한다. 자기사랑이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가 근원이며 자신의 목적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이 가장 대단하다 생각하며 자기를 높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면 발끈하며 누군가 나보다 더 뛰어나면 샘을 낸다. 자기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랑이 아니며 주님사랑과는 반대이며 실제로는 악이다. 그리고 세상사랑은 자기사랑의 짝으로 자기를 높이기 위해 세상의 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의 부가 없으면 ‘자기’의 존재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세상의 부가 있어야 하며 부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가치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온갖 거짓과 술수와 지배욕과 악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사랑과 세상사랑은 모든 거짓과 악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깨끗한 그릇이 된다는 것은 삶의 방향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만약 그 반대가 되면 예를 들어, 돈을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먹을 것을 주고 칭찬을 한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분명 깨끗한 모습이지만 그 속은 상대방을 속이고 이용하는 것이기에 더러운 것이다. 그리고 점치는 사람, 우상숭배자가 악하고 어리석은 이유는 생명이 없는 대상을 믿는 것이지만 그 사람의 목표가 자기사랑과 세상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내 원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사랑이 목적이 되어서 주님사랑이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깨끗한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자기사랑과 세상 사랑을 제거했을 때 나는 깨끗한 그릇이 된다. 자기사랑과 세상 사랑을 제거하지 않고 그 방법도 모르면서 예수를 믿는 것은 내가 지저분한 상태로 주님과 결합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사랑과 주님사랑은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깨끗한 자신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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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 깨끗한 그릇 만들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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