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기드온은 사사로서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기드온은 무려 칠십 명에 이르는 아들을 두었고, 이 외에도 세겜의 한 첩을 통해 아비멜렉이란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형제들을 학살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이 비유는 그 때 간신히 목숨을 건진 말째 요담이 선포한 것입니다.
나무들이 왕이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감람나무에게 왕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감람나무는 기름을 두고 갈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포기할 수 없어 거절했고, 포도나무는 새 술을 포기할 수 없어 포기했습니다. 나무들은 할 수 없이 가시나무에게 요청했고, 가시나무는 ‘내 그늘에 피하라’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불이 나와 사를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왕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왕이 되기를 거절한 감람, 무화과, 포도나무는 기드온과 그의 선한 아들들을 가리킵니다. 본래 기드온은 왕이 되어 다스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오직 여호와께서 통치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참조, 8:22-23). 반면 아비멜렉은 가시나무와 같이 폭력적 방법으로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요담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다 함께 망하게 될 것이라고 저주했고, 그 저주는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참고, 9:56-57)
우리는 이 비유에서 두 가지 종류의 악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가시나무의 악입니다. 가시나무는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왕이 되는 게 무엇일까요? 감람, 무화과, 포도나무가 왕이 되기를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라고 합니다. 왕이 되려는 것은 뿌리가 뽑혀 요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는 땅에 박혀 자라야 가치 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열매는 그 나무에 주어진 본래적 사명입니다. 그러나 왕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본래적 사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가시나무는 아무런 열매가 없는 쓸모없는 나무였습니다. 그런 나무이기에 왕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자기 삶에 충실하고, 자기 열매를 하나님 앞에 맺는 사람은 헛된 명예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왕이 되는 것보다 열매 맺기를 좋아합니다.
두 번 째 악은 나무들의 악입니다. 나무는 왕이 필요 없습니다. 뿌리만 땅에 내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 외에 왕이 필요 없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전통적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들이 왕을 구하듯, 그들은 쓸데없는 왕을 세운 것입니다. 왕들이 이스라엘을 행복하게 했습니까? 왕정 역사를 보면 왕들 때문에 나라 전체가 고통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하나님 외에 어떤 왕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유대 군중들은 예수님 대신 가이사를 왕으로 모셨습니다(참고, 요 19:14-15). 그러나 우리의 왕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되든, 우리의 통치자는 하나님뿐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난국에 우리 스스로 왕이 되려는 허망한 꿈을 버립시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우리만의 열매를 충실히 맺읍시다. 아울러 어떤 사람을 우리나라와 인생의 왕으로 추대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바라봅시다. 총선을 앞둔 우리가 투표할 지도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 한국기독신문 & www.kcnp.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