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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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총회 세계 선교 60주년 행사에 (2015년 6월, 고려신학대학원 강당) 참석한 해외 선교사들로부터 선교지를 방문하여 선교사 가족들에게도 (말씀)을 전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많이 생각하던 중 교회 당회와 의논 후 제법 긴 선교지 방문에 나섰다. 2016. 3. 15(화) 출발하여 4.8(금) 돌아오는 일정이다. 3.15일(화) 김해 공항에서 아침 8시 출발하여 낮 12시경 HongKong 공항에 도착하였다. 밤 12시경 남아공화국으로 출발하므로 시간 여유가 많아 홍콩 엘림 한인교회(조윤태 목사 담임)을 방문하였다. 땅 한 평 값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집 한 채 값과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물가가 비싼 곳에서 예배 처소를 장만하여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유산인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지켜 나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마치 「대한 독립군」들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감동이 솟아났다. 두 사람이 몸을 바짝 맞대고 누워야 할 만큼 참으로 좁은 공간을 비롯하여 두개의 〈Guest Room〉을 준비하여 교통 요충지인 홍콩을 찾아오는 선교사들의 쉼터로 제공하고 있는 엘림 교회의 갸륵한 배려를 보면서 이 정도라면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회들이 나그네를 위하여 〈Guest Room〉을 얼마든지 장만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우리는 겉치레나 체면문화가 심하여 상당수준의 집을 마련하여야 “Guest Room"이라고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사고 때문에 실제로 이 시설을 갖추고 있는 교회는 얼마 되지 않는 실정이다.
우리 부부는 엘림교회 사모님과 부목사님 그리고 특히 이훈 집사님으로부터 따뜻한 후대를 받고 South Africa Airways편으로 장시간에 걸친 비행 끝에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의 땅에 서구 백인들(화란,영국)이 건설한 나라 남아공화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최고로 크고 아름다운 도시 요하네스버그는 유럽이나 미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공항에서는 다시 East London으로 가야 하므로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하는데 여행가방(짐)이 세 개나 되다보니 어느새 짐꾼 두명(흑인)이 달라붙는다. 짐짓 못이기는 척 짐을 나누어 운반하는데 가까운 거리임에도 10불을 요구하므로 10불을 팁으로 건네주었다. 출발문(Gate)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짐꾼 친구가 내 겉 옷 점퍼를 자기에게 벗어 달라고 한다. 순간적으로 갈등이 일어난다. 주님께서는 산상보훈을 통하여 “네 겉옷을 달라하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내어주라”고 하셨는데 이를 어찌하나? 짧은 순간이지만 난감해 하던 중 「이곳은 별로 춥지도 않고, 나는 앞으로 추운 곳 독일 Berlin으로 가서도 수양회를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점퍼는 내가 사직동 교회를 위임받을 때 꽃다발을 들고 나왔던 화동(사직유치원 어린이)이 성장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 첫 봉급을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담임목사에게 2년 전 선물로 준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지녀야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스스로 세[우면서 점잖게 거절하였다. 선교사들은 저 멀리 가나, 우간다, 모잠비크, 케냐, 시에나리온, 레소토 그리고 남아공 등 여러 국가로부터 열일곱 가정 50여명이 참석하여 3박 4일 수양회를 가졌다. 나와 조윤태 목사가 번갈아 말씀을 증거하였으며 선교사들의 특강과 선교 보고회를 꼬박 꼬박 참석하여 나도 은혜를 많이 받았다. 모든 선교사들이 나의 후배들이므로 더욱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였다. 낯선 문화, 열악한 생활환경, 먼 이국땅에서의 외로움, 풍토병, 현지 교회를 세우고 일꾼들을 훈련시켜 세워나가야 하는 일, 그리고 자녀 교육 문제등 태산같이 쌓여 있는 선교사역 속에서도 당당하게 대처해나가는 모습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여행 경비를 뚝 잘라서 추가로 행사 경비를 후원하였다.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 담임 정은일 목사가 중국과 한국 여행의 여독으로 맡기로 했던 특강 시간을 못하게 되자 이번 행사 디렉트로 섬기는 노록수 선교사가 내 아내에게 (사모의 간증)을 맡겼다. 6년 전, 심각한 탈진 상태로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있던 나에게로 시집와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회복되고 목회를 계속할 수 있도록 결정적 헌신을 하였던 그 세월 속에 묻어 두었던 사연들을 간증할 때 선교사 부부들이 격려와 치유와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므로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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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해외 한인 선교사 가족 수양회 인도 見聞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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