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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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하지만 이 시가 한국 현대사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1948년 제주도 4.3 사건, 1919년 4월 15일 화성 제암리교회 사건, 1960년 4.19 혁명,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4월을 슬프게 했으니 말입니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교회 사건은 스코필드 박사와 생존자 전동례 할머니의 증언(『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을 통해 전모가 알려졌습니다. 3.1만세운동 후 일본군 아리타 중위가 제암리로 찾아와 과잉진압을 사과한다면서 15세 이상 남자들을 교회에 모았습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해 물어보는 척하면서 밖으로 빠져나오자 대기하던 군경들이 일제히 사격을 가했고 짚더미와 석유를 던져 불까지 질렀습니다. 김정헌(金正憲), 안경순(安慶淳), 홍원식(洪元植), 노경태는 겨우 살아남았으나 뒷산으로 도망친 노경태를 제외하고는 결국 총격에 맞아 사망했고, 교인이었던 강태성의 아내 김씨(19세)와 홍원식의 부인 김씨도 남편이 걱정되어 달려왔다가 일본 병사에 의해 살해되는 등 이날만 총 23명이 희생되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2주기입니다. 딸을 잃은 한 어머니는 이번 일과 관련하여 신앙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에게 “이제 내게 남은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라며 절규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도 비슷한 외침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 45:15) 라틴 교부들은 이를 ‘숨어계시는 하나님(absconditus deus)라고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렇게 외치지 않으셨습니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 시 22:1) 연약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철학자 김용규도 『데칼로그』에서 존재에서 분리된 존재물은 근본적으로 탐욕과 의심과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1960년 이른바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시작으로 4월 11일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부둣가에 떠오르면서 점화된 4.19 의거는 당일에만 서울 사망자 104명(경찰 측 3명 포함), 부산 사망자 13명 부상자 60명, 광주는 사망자 6명(경찰 1명 포함) 부상자 70명이 나왔습니다. 특히 4.19 전체 사망자 186명 중 학생이 77명, 그 중 대학생은 22명, 고등학생도 36명, 그리고 초중생이 19명이나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나무는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60.5 사상계), “자유의 나무는 압제자와 애국자들의 피로 새로워진다(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토마스 제퍼슨)고 했지만, 어린 생명들의 희생은 언제나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토마스 롱은 독일의 ‘다하우’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사진 한 장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끌려가는 한 어머니와 어린 딸의 모습입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비극을 중단시키기 위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행위를 합니다. 딸 뒤에 바짝 붙어 걸어가면서 손으로 아이의 눈을 덮어 아이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숨어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외면하지도 않으십니다. 부재하지도 않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고백하는 저 하늘 위로 4월의 슬픈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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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4월이여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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