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넉 달 빠르게(요 4:31-35)
예수님의 시계
중요한 약속에 10분을 지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상대방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일평생 손목시계를 비롯한 집안의 모든 시계를 10분 앞당겨 놓았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시계는 10분이 아니라, 무려 네 달이나 먼저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35절을 보면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두 종류의 시계가 나옵니다. 하나는 추수할 때가 아직 넉 달이나 남았음을 보여주는 시계입니다. 이 시계는 소위 <자연의 시계>로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시계입니다. 또 하나의 시계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시계로서 <실존적 시계, 혹은 영적 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계는 자연의 시계 보다 넉 달을 먼저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수할 때가 넉 달이 남았다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의 이미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대에서는 우기가 시작되는 11월경에 농사를 시작하여 봄에 추수하는 게 보통입니다. 10-11월경에 와서 땅을 적시는 비를 <이른 비>라고 부르고, 봄철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은 11월-12월경에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니 추수할 봄까지는 아직 넉 달이 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곡식의 추수를 말씀하신 게 아니라, 영혼의 추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수가 성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메시아로서 복음을 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넉 달>을 앞당겨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넉 달 빠르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연적 시간 보다 실존적 시간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자연적 나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이 보다 우리 시간이 더 많이 흐른 것처럼 여기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즉 현재 실제 나이가 오십 세라면, 마음으로는 육십 세 정도 된 것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게으름과 어리석은 여유를 부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실존이란 자연적 시간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나이가 사십 세인 사람이 육십 세인 사람 보다 더 먼저 부르심을 받을 수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면 관심의 대상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으로 여기면 여기 저기에 쓸데없는 관심을 가지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것, 덜 중요한 것은 걸러내고 정말로 중요한 것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할 때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한 랍비는 ‘그 누구도 임종 때에 더 많은 일을 못한 것이나,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은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시간을 앞당겨 사는 사람은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따스한 가슴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종선씨의 <따뜻한 카리스마>란 책에 의하면 성공의 비결 중 85%가 사랑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기술과 능력이 성공에 차지한 비율은 겨우 15% 뿐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될수록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실존 시계의 바늘을 <넉 달> 정도 당겨 놓고 사는 것을!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시계는 10분이 아니라, 무려 네 달이나 먼저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35절을 보면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두 종류의 시계가 나옵니다. 하나는 추수할 때가 아직 넉 달이나 남았음을 보여주는 시계입니다. 이 시계는 소위 <자연의 시계>로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시계입니다. 또 하나의 시계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시계로서 <실존적 시계, 혹은 영적 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계는 자연의 시계 보다 넉 달을 먼저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수할 때가 넉 달이 남았다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의 이미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대에서는 우기가 시작되는 11월경에 농사를 시작하여 봄에 추수하는 게 보통입니다. 10-11월경에 와서 땅을 적시는 비를 <이른 비>라고 부르고, 봄철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 말씀은 11월-12월경에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니 추수할 봄까지는 아직 넉 달이 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곡식의 추수를 말씀하신 게 아니라, 영혼의 추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수가 성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메시아로서 복음을 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넉 달>을 앞당겨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넉 달 빠르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연적 시간 보다 실존적 시간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자연적 나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이 보다 우리 시간이 더 많이 흐른 것처럼 여기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즉 현재 실제 나이가 오십 세라면, 마음으로는 육십 세 정도 된 것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게으름과 어리석은 여유를 부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실존이란 자연적 시간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나이가 사십 세인 사람이 육십 세인 사람 보다 더 먼저 부르심을 받을 수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면 관심의 대상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으로 여기면 여기 저기에 쓸데없는 관심을 가지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것, 덜 중요한 것은 걸러내고 정말로 중요한 것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할 때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한 랍비는 ‘그 누구도 임종 때에 더 많은 일을 못한 것이나,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은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시간을 앞당겨 사는 사람은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따스한 가슴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종선씨의 <따뜻한 카리스마>란 책에 의하면 성공의 비결 중 85%가 사랑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기술과 능력이 성공에 차지한 비율은 겨우 15% 뿐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될수록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실존 시계의 바늘을 <넉 달> 정도 당겨 놓고 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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