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시는 방법 중에는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올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다윗을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들입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 왕 자신이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그러므로 베냐민 사람들은 사울 왕의 동족들입니다. 1~2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화살도 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대세를 따르지 않고 옳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대세가 아닌 옳음을 따르는 모습을 보십시오.
첫째, 대세를 따랐다면 자신들의 혈족인 사울을 지지하고 다윗을 적대시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둘째, 당시에 다윗의 형편은 보잘것없었습니다. 당시 다윗은 블레셋의 시글락에 망명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블레셋이 어디입니까?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경험은 적들 중 가장 강력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은 늘 블레셋의 속국처럼 살았습니다. 더구나 블레셋도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인 일과 다윗이 장군이 된 후로 블레셋을 힘들게 했기에 다윗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블레셋이 지금은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지키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이런 상황은 다윗의 처지가 이스라엘 안에서 얼마나 위태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런 다윗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셋째, 아직도 엄연히 사울이 왕이었으므로, 다윗을 돕는 것은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본문의 베냐민 사람들은 왜 다윗을 도왔을까요? 그것은 다윗을 돕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차기 왕으로 내정한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다윗이 어렵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실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눈앞의 권력인 사울보다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들은 대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또 이들은 사울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이 볼 때 다윗은 골리앗을 이겨 사울을 위기에서 건졌고, 수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며, 사울의 사위이기도 했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핍박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도운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도 혼란합니다.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무엇이 옳은지 알기 힘들 정도로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현안들에 대해 이미 결정이 난 것처럼 어느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느낌도 받습니다. 국민들은 정치적 입장이나 지연과 학연, 혹은 어떤 설에 자극받고 있습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대세나, 이익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즉 옳음을 따라, 진리와 정의를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인데, 우리까지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보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무엇이 옳은지 깨닫게 해 주시길 기도하고, 그 옳음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세가 아니라 옳음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결국엔 진리가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진리 편에 서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이 땅의 백성으로 하여금 결국은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에는 다윗을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들입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 왕 자신이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그러므로 베냐민 사람들은 사울 왕의 동족들입니다. 1~2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화살도 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대세를 따르지 않고 옳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대세가 아닌 옳음을 따르는 모습을 보십시오.
첫째, 대세를 따랐다면 자신들의 혈족인 사울을 지지하고 다윗을 적대시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둘째, 당시에 다윗의 형편은 보잘것없었습니다. 당시 다윗은 블레셋의 시글락에 망명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블레셋이 어디입니까?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경험은 적들 중 가장 강력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은 늘 블레셋의 속국처럼 살았습니다. 더구나 블레셋도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인 일과 다윗이 장군이 된 후로 블레셋을 힘들게 했기에 다윗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블레셋이 지금은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지키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이런 상황은 다윗의 처지가 이스라엘 안에서 얼마나 위태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런 다윗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셋째, 아직도 엄연히 사울이 왕이었으므로, 다윗을 돕는 것은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본문의 베냐민 사람들은 왜 다윗을 도왔을까요? 그것은 다윗을 돕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차기 왕으로 내정한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다윗이 어렵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실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눈앞의 권력인 사울보다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들은 대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또 이들은 사울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이 볼 때 다윗은 골리앗을 이겨 사울을 위기에서 건졌고, 수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며, 사울의 사위이기도 했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핍박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도운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도 혼란합니다.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무엇이 옳은지 알기 힘들 정도로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현안들에 대해 이미 결정이 난 것처럼 어느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느낌도 받습니다. 국민들은 정치적 입장이나 지연과 학연, 혹은 어떤 설에 자극받고 있습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대세나, 이익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즉 옳음을 따라, 진리와 정의를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인데, 우리까지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보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무엇이 옳은지 깨닫게 해 주시길 기도하고, 그 옳음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세가 아니라 옳음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결국엔 진리가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진리 편에 서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이 땅의 백성으로 하여금 결국은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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