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오대양 공장 구내식당 천정에서 32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남성 4명과 여성 28명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당시 오대양의 사장이었던 박순자 씨는 채권자 이모씨 부부로부터 빚 독촉을 받고 있었다. 그러자 오대양 직원 10여명이 이모씨 부부를 감금하고 집단폭행하며 사채포기를 강요한 일이 발생했다. 그후 이씨의 고발로 오대양 직원들은 구속되고, 박씨 모자는 경찰의 조사를 받게된 일이 오대양사건 발생 2주전에 일어났다.
경찰발표는 오히려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즉 사망자들 중 이모씨가 다른 31명을 목졸라 숨지게 한 후, 스스로 자살했다는 발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반항의 흔적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36도 이상의 천정에서 4일 간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들은 저항할 수 없는 탈진과 가사 상태였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하지만 의아한 점은, 사망자들의 시신이 이틀만에 서둘러 화장되었고, 옷가지와 유류품은 분실된 것이었다. 게다가 과학수사연구소 부검팀은 여성들 중 절반에서 성폭행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문투성이었다. 과연 36도 이상의 고온이 계속되는 천정 위 작은 공간에서 4일간 32명이 집단으로 생활할 수 있었을까? 그들 중 오직 한 사람이 도대체 무슨 힘으로 31명을 목졸라 숨지게 할 수 있었을까? 왜 반항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을까? 여성 사망자들 중 절반이 성폭행을 당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박순자 씨가 만든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박순자는 과연 주범인가, 아니면 하수인이가?
사건현장을 가장 먼저 찾았던 고 탁명환 소장은 타살을 확신했다. 현장을 목격한 탁 소장은, 이후 강연을 통해 지속적으로 타살의혹을 제기했다. 스스로 매년 8월 말이 되면 사건현장을 찾았고, 결코 32명이 고열이 지속되는 천장 위 작은 공간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탁명환 소장은 오대양사건 1주년을 맞아 「현대종교」 1988년 9월호에 게재한 글에서, “오대양 참사사건이 속시원한 결말을 내지 못한 채 1주년을 넘겼다.... [수사책임자는] 선거가 임박한 시기인지라 확대시키지 않을 방침이므로 협조해 달라고 했다. 그때 직감적으로 이 사건은 정치권력의 배후가 있음을 감지했다....[오대양사건은] 집단자살이나 경찰의 최종 발표대로 한 사람에 의한 집단 교살극이 아니고 제3의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사라진 돈의 행방이었다. 탁명환 소장은 박순자 씨가 모은 거액의 돈은 제3의 배후세력으로 전달되었고, 이 돈의 행방을 감추기 위해 박씨를 비롯한 32명이 타살당했다는 것이 탁 소장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유병언 구원파가 배후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탁 소장은 직간접적으로 심각한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성한 탁 소장의 양심선언서에는, “나는 밤을 지새우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면서 마지막 유서나 다름없는 양심선언서를 씁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신변의 위험 속에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살을 택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라는 절박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사건 발생 후 30년이 흘렀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도 오대양사건을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오대양사건 30주년을 맞으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억울한 32명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교회와 사회가 다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진실을 밝히는데는 공소시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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