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황실의 찰스 왕세자. 그의 아버지 필립 공(公)은 아내와 아들의 그늘에 가려 존재조차 희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들 찰스에 대한 영향력만큼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아들의 일생을 자신의 무릎 위에서 철저히 조종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찰스에 대한 첫 번째 교육 목표는 엄격한 장교 출신인 자신처럼 강인하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다.
94년 피플지(誌)는 필립 공을 빈정거리기 잘하는 엄격한 규율가라고 묘사한 일이 있다. 지적(知的)이었지만 예민하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례하게 들리는 농담을 툭툭 던지는 안 좋은 기교도 지녔다고 한다.
1957년 만 아홉 살이던 찰스는 고든스턴 공립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스파르타식을 고집한 군 출신 아버지는 귀족학교 이튼스쿨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 그는 섬세하고 수줍음 잘 타는 소년이었다.
필립은 학교생활에 어려워하는 아들 찰스를 겁쟁이라고 불렀고 마흔 여덟이 될 때까지 찰스의 아이디어에 경멸을 쏟아 부었다. 이런 조롱이 찰스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찰스는 아버지를 항상 영웅으로 숭배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높은 기대대로 사는 것에 늘 바동거려야만 했던 것이다. 찰스는 생일잔치에도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의 정신적 학대에 어린 시절 내내 복종해야 했다. 필립은 마음으로도 찰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버킹검 궁전에 있는 필립의 방에는 아들 찰스 대신 딸 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편애 속에 자랐다. 아들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기보다 하인을 통해 전갈을 보내는 등 권위적인 방식으로 일관했다.
찰스는 천성적으로 마초맨(남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압력과 경멸을 받을 때 찰스는 친구들에게 “내 갈 길을 가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머니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엘리자베스2세는 자식을 돌볼 시간이 없는 여왕이었고 금욕주의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키스를 하거나 꼭 껴안기보다는 의무를 강조했다. 어린 시절 찰스는 하루 동안 30분 정도밖에 어머니를 볼 수 없었고 유모의 손에 의해 길러져야 했다. 찰스는 전기에서 사랑스런 포옹과 키스를 갈망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 여왕은 그렇지 못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심리학자, 아동학자, 교육학자들이 자녀양육에 관한 책을 썼다. 그 양은 지구를 덮고도 남을 분량이다. 하지만 그 책을 요약하면 딱 한 문장이다.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6:4)
성경이 말하는 ‘노엽게’의 의미는 ‘아이들을 괴롭게 말라. 화나게 하지 말라. 흥분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 노여움이 사회악이 되고 범죄가 된다. 역기능 자녀가 출생하는 환경이 된다. 때문에 바른 부모교육은 이 작고 작은 노여움을 정복하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가장 큰 자녀의 분노는 부부 불화
“어릴 때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싸웠다. 이유도 없이 서로는 서로의 감정들을 고함으로 표현했다. 등교할 때마다 골목길을 나올 때 이웃 어른들께 인사를 하며 나는 수치심으로 얼굴도 들지 못한 채 항상 도망치듯 빠져 나와야만 했다.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지금의 내 모습들은 이렇게 움츠려 들었고 지금도 어른들 앞에서라면 마치 죄인처럼 떳떳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다.” -한 젊은이의 일기 중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는 많은 일들 중에 가장 큰 노여움은 부부불화다. 자녀들은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볼 때, 이내 안정감을 잃는다. 삶의 의욕이 꺾인다.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심지어 자살충동도 느낀다. 때문에 자녀를 위한 가장 좋은 학습 환경은 부모환경이라 부른다.
부모의 불화는 원초적인 심리 감정이라 불리는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불안감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는 순간, 이글거리는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마음에 불을 지른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반대로 부부의 화목한 모습은 자녀의 삶에 에너지가 된다. 매사에 자신감을 심는다. 의욕을 갖게 한다. 꿈에 부푼다. 긍정의 에너지는 나야말로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아빠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 아이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그 선물을 줄 수 없을까?
94년 피플지(誌)는 필립 공을 빈정거리기 잘하는 엄격한 규율가라고 묘사한 일이 있다. 지적(知的)이었지만 예민하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례하게 들리는 농담을 툭툭 던지는 안 좋은 기교도 지녔다고 한다.
1957년 만 아홉 살이던 찰스는 고든스턴 공립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스파르타식을 고집한 군 출신 아버지는 귀족학교 이튼스쿨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 그는 섬세하고 수줍음 잘 타는 소년이었다.
필립은 학교생활에 어려워하는 아들 찰스를 겁쟁이라고 불렀고 마흔 여덟이 될 때까지 찰스의 아이디어에 경멸을 쏟아 부었다. 이런 조롱이 찰스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찰스는 아버지를 항상 영웅으로 숭배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높은 기대대로 사는 것에 늘 바동거려야만 했던 것이다. 찰스는 생일잔치에도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의 정신적 학대에 어린 시절 내내 복종해야 했다. 필립은 마음으로도 찰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버킹검 궁전에 있는 필립의 방에는 아들 찰스 대신 딸 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편애 속에 자랐다. 아들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기보다 하인을 통해 전갈을 보내는 등 권위적인 방식으로 일관했다.
찰스는 천성적으로 마초맨(남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압력과 경멸을 받을 때 찰스는 친구들에게 “내 갈 길을 가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머니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엘리자베스2세는 자식을 돌볼 시간이 없는 여왕이었고 금욕주의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키스를 하거나 꼭 껴안기보다는 의무를 강조했다. 어린 시절 찰스는 하루 동안 30분 정도밖에 어머니를 볼 수 없었고 유모의 손에 의해 길러져야 했다. 찰스는 전기에서 사랑스런 포옹과 키스를 갈망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 여왕은 그렇지 못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심리학자, 아동학자, 교육학자들이 자녀양육에 관한 책을 썼다. 그 양은 지구를 덮고도 남을 분량이다. 하지만 그 책을 요약하면 딱 한 문장이다.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6:4)
성경이 말하는 ‘노엽게’의 의미는 ‘아이들을 괴롭게 말라. 화나게 하지 말라. 흥분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 노여움이 사회악이 되고 범죄가 된다. 역기능 자녀가 출생하는 환경이 된다. 때문에 바른 부모교육은 이 작고 작은 노여움을 정복하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가장 큰 자녀의 분노는 부부 불화
“어릴 때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싸웠다. 이유도 없이 서로는 서로의 감정들을 고함으로 표현했다. 등교할 때마다 골목길을 나올 때 이웃 어른들께 인사를 하며 나는 수치심으로 얼굴도 들지 못한 채 항상 도망치듯 빠져 나와야만 했다.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지금의 내 모습들은 이렇게 움츠려 들었고 지금도 어른들 앞에서라면 마치 죄인처럼 떳떳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다.” -한 젊은이의 일기 중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는 많은 일들 중에 가장 큰 노여움은 부부불화다. 자녀들은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볼 때, 이내 안정감을 잃는다. 삶의 의욕이 꺾인다.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심지어 자살충동도 느낀다. 때문에 자녀를 위한 가장 좋은 학습 환경은 부모환경이라 부른다.
부모의 불화는 원초적인 심리 감정이라 불리는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불안감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는 순간, 이글거리는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마음에 불을 지른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반대로 부부의 화목한 모습은 자녀의 삶에 에너지가 된다. 매사에 자신감을 심는다. 의욕을 갖게 한다. 꿈에 부푼다. 긍정의 에너지는 나야말로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아빠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 아이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그 선물을 줄 수 없을까?

ⓒ 한국기독신문 & www.kcnp.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