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③
사진회화: 경계선상의 이해할 수 없는 예수
1. 김치파스타와 포스트모던 예수
‘김치파스타, 짬짜면, 카레라이스’ 등의 음식문화. ‘아파트로 들어온 한옥, 온돌과 벽돌을 혼합한 집’ 등의 주거문화. 최근 문화 현상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전에 존재하는 것들을 혼합 또는 조합하여 새로운 제3의 것을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경계를 해체하는 이러한 혼합 정신은 곧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다.
‘김치파스타, 짬짜면, 카레라이스’ 등의 음식문화. ‘아파트로 들어온 한옥, 온돌과 벽돌을 혼합한 집’ 등의 주거문화. 최근 문화 현상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전에 존재하는 것들을 혼합 또는 조합하여 새로운 제3의 것을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경계를 해체하는 이러한 혼합 정신은 곧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다.
빌라도가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질문한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고 되묻는다. 빌라도가 다시 묻는다.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는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답한다. 빌라도가 다시 묻는다.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노라” 빌라도가 다시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 18:33-38)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에서 우리는 또 다른 포스트모던 정신을 예수에게서 읽을 수 있다. 빌라도의 질문은 ‘왕, 혁명, 진리 (여기에 민중, 통일, 해방, 진실 규명 등을 넣어도 될 것이다)’ 등 거대담론이었으나, 예수의 대답은 동문서답과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경계 해체, 혹은 미시 담론, 곧 작은 이야기를 중시하는 포스트모던적이었다. 오늘 진리에 대한 이야기가 잡담거리로, 진실 규명을 영원한 수수께끼로, 영생과 구원, 생명과 부활의 담론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이때 원조 포스트모던 예수는 무엇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2. 사진회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¹는 미술적으로 혼합을 선호한 작가였다. 동독 출신이지만 서독과 파리를 여행하면서 전통적인 고전주의 회화 양식이 아닌 새로운 예술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과 자극을 받게 된다. 특히 1959년 두 번째 서독 여행에서 관람한 <카셀 도큐멘타 Ⅱ>전시회는 그의 예술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이 전시회에 전시된 잭슨 폴록(J. Pollock), 바넷 뉴먼(B. Newman)의 작품을 통해 당시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인 추상 미술을 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리히터는 동독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추상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새로움은 리히터가 추구할 ‘제 3의 길(Third Path)’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그는 전통적인 고전주의 예술과 현대미술을 접합시킬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진회화이다. 그림을 그리되 사진처럼, ‘사진 같은 사진이 아닌’ 회화인 것이다. 빌라도의 이데올로기 담론에서 포스트모던 예수가 말했던 경계 해체, 미시담론, 혹은 추상적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녕 제 3의 길이 될 수 있을까?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¹는 미술적으로 혼합을 선호한 작가였다. 동독 출신이지만 서독과 파리를 여행하면서 전통적인 고전주의 회화 양식이 아닌 새로운 예술 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과 자극을 받게 된다. 특히 1959년 두 번째 서독 여행에서 관람한 <카셀 도큐멘타 Ⅱ>전시회는 그의 예술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이 전시회에 전시된 잭슨 폴록(J. Pollock), 바넷 뉴먼(B. Newman)의 작품을 통해 당시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인 추상 미술을 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리히터는 동독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추상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새로움은 리히터가 추구할 ‘제 3의 길(Third Path)’을 가능하게 했다. 결국 그는 전통적인 고전주의 예술과 현대미술을 접합시킬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진회화이다. 그림을 그리되 사진처럼, ‘사진 같은 사진이 아닌’ 회화인 것이다. 빌라도의 이데올로기 담론에서 포스트모던 예수가 말했던 경계 해체, 미시담론, 혹은 추상적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녕 제 3의 길이 될 수 있을까?
3. 루디 삼촌과 이해할 수 없는 예수
리히터 (1965)
<루디 삼촌(Uncle Ludi)>은 리히터의 인간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부분을 특히 잘 투영한 작품이다. 배경과 사람을 흐려놓아서(경계 해체) 사람이 반투명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심령사진 같기도 하다. 사진 속 주인공의 복장을 보라. 저 코트와 모자는 당시 독일 나치 장교들의 복장이었다. 독일의 나치는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으며,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루디 삼촌(Rudolf Schonfelder)도 결국 나치의 일원이 되지만, 리히터의 눈에는 단지 그의 가족이자 삼촌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치 시대의 독일 군인을 생각하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무자비한 군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는 군인은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과 정다움이 느껴진다.
사실 리히터의 사진회화는 구체적인 과거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역사화(歷史畵)’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서양미술사에서 역사화가 시민혁명 이전의 지배논리를 정당화하는 시각적 장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리히터의 사진회화는 전통적인 역사화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1977년에 있었던 테러리스트의 비극을 그린 〈1977년 10월 18일〉, 정신박약으로 나치수용소에서 살해당한 〈마리안네 아줌마〉, 나치즘에 부역한 사실이 발각되어 법정 앞에 선 〈하이드 씨〉, 경찰에 연행되어 가는 범인의 눈가리개를 강조한 작품 〈후드(덮개)〉, 시위 광경 사진을 그린 〈데모〉 등 40년 작업생활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리히터의 주제는 ‘사진 속의 역사’였다.
하지만 사진회화를 통해 리히터는 개인과 사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역사적으로 주어진 사실과 역사적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판단을 요구한다. 대립적 영역 사이에서 지난 역사적 사건을 진지하게 다시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김치파스타, 짬짜면,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정치 철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이데올로기적 함성을 듣는다. 그러나 리히터는 이렇게 말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을 이해가 안 되게 묘사할수록 더욱더 훌륭한 그림이 된다.” 빌라도 앞의 예수는 오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각주>
1. 게르하르트 리히터 : 1932년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1961년 서독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스탈린 체제와 나치즘의 영향을 받으며 예술가로 성장했다. 1950년 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벨라스케스(D. Velazquez), 렘브란트(H. Rembrandt) 등의 고전주의 대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디에고 리베라(D. Rivera), 파블로 피카소(P. Picasso)에게 사사 받으며 전통적인 고전주의 회화 양식을 습득하였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 한국기독신문 & www.kcnp.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