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07(금)
 
강규철 장로.JPG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가끔씩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보며 배워 왔던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생활을 왜 나는 본받지 못하는지 안타까움에 현대 교회의 모습과 신앙관을 예전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것과 비교해 보면서 옛날이 그리워지고 또한 아쉬움이 넘칩니다.
 1. 목사님들의 삶은 교회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예전의 목사님들은 아주 엄격하고 매사에 철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삶은 빈틈이 없었으며 성경에 따른 생활을 강조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맡긴 삶이었습니다.
 먼저 이들은 금전을 초월하여 살았습니다. 대체로 목사님 가정에는 식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청빙의 조건에 사례금의 항목이 없었습니다. 그냥 교회 형편에 따라 주는 대로 받았습니다. 보통 쌀 몇 가마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사택은 보통 한 두 칸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섬기게 된 것 만도 감사하며 시무하셨습니다. 그리고 외부로 가서 말씀을 전하고 받은 사례를 교회에 다시 헌금하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이는 그것이 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이지요.
 설교 시간에는 예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항상 설교시간 내내 성경구절을 찾고 읽게 하였습니다. 보통 한 시간 이상이었습니다. 옛날 학생신앙운동 수양회에서 밤새도록 설교하신 목사님도 기억납니다. 자고 싶으면 자라시면서 저녁설교를 다음날 새벽까지 하신 것입니다.
 저는 자라면서 한 번도 아버님의 손을 잡은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대화를 나눠본 기억도 거의 없었습니다. 가정보다 교회가 우선이었기에 자식들을 돌보는 것은 어머님의 몫이었습니다. 평상시의 모습은 새벽부터 의관을 정제하고 성경 읽고 기도 하고 심방하시고 설교 준비하시고 그리고 교회가 어려우면 기도원에 가서 작정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삶에는 하나님, 기도, 말씀, 전도 등이 전부였습니다. 취미생활이란 말을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이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결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2. 제가 기억하는 장로님의 모습은 인자한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예전의 장로님들은 많은 고난을 감내하며 묵묵히 교회의 살림을 도맡아 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려운 목회자의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기도 어려운데 자녀들을 양육시켜야 하고 교회와 목사님과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느라 지쳐있는 어머님의 모습이 바로 예전의 장로님들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수시로 목사님 가정에 가셔서 혹시라도 먹을 양식이 떨어졌나 살피시고 부족한 것을 채우시곤 했습니다. 항상 교회에 들리시어 살피시며 청소도 하며 때로는 종도 치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대부분 장로님들께서 철야기도를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교인들의 눈에 비친 장로님은 권위와는 거리가 먼 인자한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여름 성경학교를 하면 정말 맛있는 것을 장로님으로부터 많이 대접 받았습니다. 제가 마음에 항상 새기며 존경하는 장로님은 전교인의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시고 주일에 만나면 안아주시며 축복기도를 해주셨는데 이는 아마 평생을 지나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놀라운 것은 장로님들이 목사님으로 부터 많은 야단을 듣기도 하시고 심지어 설교시간에도 꾸중을 듣기도 하셨는데 아무도 그에 대해 반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라 생각하시고 항상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 오늘의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을 봅니다.
 오늘날에는 귀족목사님이란 말이 생겼답니다. 청빙을 하면 사례금, 사택 규모, 심지어 차량 종류까지 협상의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예산으로 모든 것을 보장해 주고 있는데 부흥회, 외부설교, 결혼주례 사례금을 고액으로 챙기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설교준비는 인터넷으로 짜깁기를 하고 말씀 중심보다는 예화로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좋아 합니다. 심지어 설교를 인문학강의로 하면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시무하고 있는 교회보다 더 큰 교회에서 요청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무엇보다 목사님은 성도들의 눈에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에는 장로님들도 교회헌법에 있는 권한을 최대한 가지고자 합니다. 목사님을 청빙할 때 장로님들은 후보 목사님의 모든 조건을 살펴보면서 마치 직원을 채용하는 분위기를 가집니다.
 그러다보니 목사님의 학벌이 청빙의 조건이 되며 마치 삯꾼 같은 느낌이 나게 되고 힘이 있는 장로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게다가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그 모든 책임을 목사에게 전가합니다. 현대 교회에서의 장로님의 권위는 정말 대단합니다. 공동의회라는 최고 의결기관이 있는데도 당회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합니다. 이 당회에는 파당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며 회의 때는 마치 국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장로가 되길 위해서 모든 것을 던지기도 하고 장로 직분이 쟁취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장로투표에서 떨어지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집사 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섬기고 낮은 곳에서 봉사하며 헌신하던 분이 장로가 되면 더 권위적이고 고집불통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장로들을 야단치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한번쯤은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가를 냉정히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교회의 영적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우리들에게 깊은 반성이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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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철 장로] 예전의 목사님, 장로님이 많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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