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015년도 여자월드컵 예선에서 우리 국가대표팀이 스페인을 이겨 사상 첫 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날 전반전은 우리 팀은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급급했고, 결국 한 골을 내준 상태에서 전반전을 끝냈습니다. 그러나 후반전이 되자 우리 팀은 전혀 다른 팀처럼 보였습니다. 수비 라인은 더 이상 뒤로 밀리지 않았고, 공격진에게 활발한 볼 배급을 해 주었습니다. 결국 후반에 두 골을 넣어 드라마처럼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후에 윤덕여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하프 타임에 선수들에게 밀고 올라가도록 주문한 것이 주효했다고 했습니다.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잠깐 쉬던 바로 그 시간에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2015년도의 하프타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반기 여섯 달을 보내고 후반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삶의 코치이신 하나님으로부터 2015년도의 후반전을 어떻게 뛰어야 할 것인지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매우 적합한 가르침을 줍니다.
본문에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프타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전반전은 사백 삼십 년 동안 살던 애굽에서 벗어나 광야까지 가는 과정이었고, 당시 주장 선수는 모세였습니다. 그들의 후반전은 광야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을 얻는 과정이었고, 그 주장 선수는 여호수아였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은 모압 평지에 있었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얻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백성들은 매우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반전에 자신들을 이끌었던 주장 선수인 모세가 후반전에 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낙심했습니다.
사실 백성들에게 모세는 거의 하나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 얼마 동안 보이지 않았을 때 백성들은 금방 혼란에 빠져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을 정도로 모세는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신명기 34장에 보면 모세가 죽은 후에 그의 무덤을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애굽의 무덤 문화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 노예로서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죽은 후 그들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했다면 그들은 모세를 숭배하느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잊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무덤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모세에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대한 과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후반전을 시작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 과거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 2절에서 <내 종 모세>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해 보인다 해도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없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모세를 넘어설 것을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후반전을 시작하려면 과거를 극복해야 합니다. 과거가 아무리 영광스럽더라도 극복해야 합니다. 그 영광은 교만으로 남아 우리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과거가 수치스럽더라도 극복해야 합니다. 그 수치 역시 열등감으로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란 소중히 기억하고 미래로 전진하는 디딤돌로 삼아야 할 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집착할 대상은 아닙니다. 과거의 올무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를 극복합시다. 우리 안의 모세를 극복합시다. 영광스러운 과거이든 부끄러운 과거이든 모두 내려놓읍시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3장 12-14절에서 얻었다 함도 아니고, 이루었다 함도 아니고, 잡은 줄로 여기지도 않고, 뒤에 있는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부름의 상을 위해, 즉 미래를 위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과거를 다 내려놓고 후반전에 출전하길 바랍니다. 죄가 있었다면 십자가 보혈 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자랑스러운 성취가 있었다 해도 다 잊으십시오. 그리고 2015년도 후반기라는 백지 위에 마치 처음 시작하듯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그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2015년도의 하프타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반기 여섯 달을 보내고 후반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삶의 코치이신 하나님으로부터 2015년도의 후반전을 어떻게 뛰어야 할 것인지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매우 적합한 가르침을 줍니다.
본문에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프타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전반전은 사백 삼십 년 동안 살던 애굽에서 벗어나 광야까지 가는 과정이었고, 당시 주장 선수는 모세였습니다. 그들의 후반전은 광야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을 얻는 과정이었고, 그 주장 선수는 여호수아였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은 모압 평지에 있었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얻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백성들은 매우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반전에 자신들을 이끌었던 주장 선수인 모세가 후반전에 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낙심했습니다.
사실 백성들에게 모세는 거의 하나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 얼마 동안 보이지 않았을 때 백성들은 금방 혼란에 빠져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을 정도로 모세는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신명기 34장에 보면 모세가 죽은 후에 그의 무덤을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애굽의 무덤 문화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 노예로서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죽은 후 그들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축했다면 그들은 모세를 숭배하느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잊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무덤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모세에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대한 과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후반전을 시작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 과거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 2절에서 <내 종 모세>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해 보인다 해도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없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모세를 넘어설 것을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후반전을 시작하려면 과거를 극복해야 합니다. 과거가 아무리 영광스럽더라도 극복해야 합니다. 그 영광은 교만으로 남아 우리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과거가 수치스럽더라도 극복해야 합니다. 그 수치 역시 열등감으로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란 소중히 기억하고 미래로 전진하는 디딤돌로 삼아야 할 것이기는 하지만, 결코 집착할 대상은 아닙니다. 과거의 올무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를 극복합시다. 우리 안의 모세를 극복합시다. 영광스러운 과거이든 부끄러운 과거이든 모두 내려놓읍시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3장 12-14절에서 얻었다 함도 아니고, 이루었다 함도 아니고, 잡은 줄로 여기지도 않고, 뒤에 있는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부름의 상을 위해, 즉 미래를 위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과거를 다 내려놓고 후반전에 출전하길 바랍니다. 죄가 있었다면 십자가 보혈 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자랑스러운 성취가 있었다 해도 다 잊으십시오. 그리고 2015년도 후반기라는 백지 위에 마치 처음 시작하듯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그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길 기원합니다.
ⓒ 한국기독신문 & www.kcnp.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