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인류와 바이러스의 전쟁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3월, 신앙의 거장 한 분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 물리학자요 성직자였던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1930-2021)입니다. 처음에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리물리학을 가르쳤으나 50대 초반에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고, 나중에 다시 학계로 돌아와 케임브리지의 퀸즈칼리지 학장을 역임하며 과학 최고의 권위인 왕립학회 회원 자격을 얻은 동시에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템플턴상을 수상하기까지 한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분의 최근 작품들 즉『양자물리학과 기독교신학』(2009),『과학으로 신학하기』(2015), 그리고『성서와 만나다』(2015)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발달한 문명에서는 더 이상 기독교가 발전하지 않는다거나 과학의 영역에서 신학이 설 자리가 없다는 항간의 속설들이 어렴풋이 내면의 자아에 끼치던 영향력을 붕괴시키는 충격파가 그 책들로부터 뿜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앙을 ‘이유 있는 믿음’이라고 부르고, 과학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실재를 이해하는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과학자인 동시에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구론’을 주창한 맬더스(Thomas Malthus, 1766-1834) 역시 영국왕립학회 회원이었으나 본직은 목사였고,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은 본래 아우구스티누스파에 속한 성직자로 훗날 수도원장이 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활동하던 당시 과학은 오늘날 관점으로 볼 때 미미한 수준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에 이십 세기 접어들면서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DNA 구조를 발견하는 등 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신학은 점차 뒤안길로 밀려났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 과학 분과에서도 최첨단에 서 있었던 폴킹혼의 신앙은 어떤 의미에서도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습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 생애와 업적이 대대적으로 기념되었겠지만, 과학과 미생물의 치열한 전투 한 복판에서 마지막 순간조차 그리스도인으로서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영국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먼저 개발되는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았을까요?
한국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과학자-신학자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 1953)입니다. 옥스퍼드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교제하던 중 회심하여 같은 대학에서 신학박사가 되었고, 현재는 런던대학교 킹즈칼리지 학장으로서 종교와 과학 그리고 교회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원래 논문의 주제였던 ‘칭의(稱義, justification)’ 이론으로부터『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와 같은 교회사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고 있지만 그의 성취는 이 한 마디, 바로 ‘과학적 신학(A Scientific Theology)’에 응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저 또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학은 과학이다!’ ‘성육신과 십자가야말로 가장 과학적인 교리다!’ 그런데 맥그래스는 ‘신학적 과학(A Theological Science)’의 가능성을 살짝 열어두면서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기독교는 과학적 서사를 풍요롭게 한다.”(『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296)
우연과 해체의 개념이 판을 치던 현대과학계에서 거장 중의 거장 아인쉬타인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지요? “하나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으신다.” 사실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파했던 하이젠베르크도 성경을 좋아하고 삶의 신앙을 강조했다고 하고, 무신론자로 유명한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을 압도했다는 평가의 주인공 비트겐쉬타인 역시 의외로 신앙을 견지했다지 않습니까? 철학이든 과학이든 인간과 우주를 초월하는 ‘실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며, 바로 그곳에 신앙이 자리하고 신학이 존재하는 영역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바이러스의 역습 사건도 마찬가지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제나 자연이 먼저 도전장을 던져왔고, 인류는 가진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해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고투를 벌이고 해결책을 만들어내었고 우리는 그것을 ‘과학’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아무리 거센 도전이라도 결코 멸망하지 않고 버티고 견뎌서 마침내 승리하리라는 믿음이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그런 추격들이 가능했겠습니까? 이번에도 그런 아름다운 동행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