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배 목회자가 찾아와 조언을 구했습니다. 들어보니 목회 현장에 늘 있는 갈등의 문제였습니다. 목회자와 사사건건 맞서는 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제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이런 주제는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싸우면서 억지로 뜻한 바를 관철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뒤로 미루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평화할 때 평안을 얻습니다. 사탄은 평화를 깨뜨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탄의 책략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런 갈등 때문에 힘들었던 것은 바울 사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고린도교회는 바울 사도께서 오랜 시간을 바쳐 최선의 헌신으로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은 핍박자였으므로 예수님의 사도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바울이 전한 복음에까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직접 가기도 하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사람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최소 네 번의 편지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는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만 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바울 사도의 대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바울 역시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바울은 본문 3절에서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육신을 입고 육정을 따라 삽니다. 그러나 육체적 방법으로 싸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떤 방식으로 싸웠을까요?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웠습니다. 본문 4-5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바울 사도의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립니다. 그 단적인 예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여리고성보다 더 견고한 모든 이론을 무너뜨립니다. 또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만듭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이론입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이유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옳음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론들을 동원합니다. 회의를 하는 중에 생각과 이론들이 충돌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분란이 일어납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생각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굴복시키고 사로잡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후배 목사님에게 드린 조언도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목회자가 또 하나의 생각과 이론을 보태어 더 시끄럽게 하지 말고, 생각과 이론으로 충돌하지 말고, 겸손히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면 결국에는 사람의 생각과 이론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만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 될 것처럼 보인 것들도 나중에는 이루어지고, 또 그 과정도 평안하게 흘러갑니다. 그리스도인은 늘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주변을 시끄럽게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한 사람은 늘 조용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입니다. 요즘 세상도 시끄럽고 교회도 시끄럽습니다. 생각과 이론들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평안한 승리를 얻길 원합니다. 고요히 머리 숙여 주님을 생각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