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을 구제하고 선교했던 밥 피얼스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지만 좀 더 정리해 두고자 한다. 한국전쟁 직전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피난민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 한국의 전쟁 실상과 참담한 현실을 보고 전쟁 피난민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집단 학살된 후 방치된 기독교인들, 고아들과 과부들, 버려진 아이들의 딱한 현실을 보고하면서 “이 글이 독자들에게 공분과 동정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한다”고 썼다. 그리고 그가 목격한 피난민의 고통과 처참한 참상을 보고 구호단체를 설립하게 되는데 그것이 1950년 9월 22일 조직된 월드비전(World vision)이었다. 이 조직은 그 이후 가장 큰 기독교 구제 기관으로 성장했다. 그는 보고서 작성 외에도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첫 번째 영상이 ‘38선’(The 38th Parallel)이었는데, 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한국의 분단 상황에 대한 영화였다. 두 번째 영상이 1952년 제작된 ‘불꽃’(The Flame)인데, “시대를 초월한 한국 전쟁에 대한 가장 주목할 만한 기독교 영상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기록 영화였다. 피얼스는 이 영상을 미국 전역의 교회나 기독교 기관에서 상영하고 피난민들과 한국의 고아들을 돕기 위한 후원을 요청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미국 전역에서 후원자를 얻게 되었고 월드 비전의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전쟁 중과 전쟁 이후 월드비전은 한국의 많은 고아원을 지원하고 고아들을 위해 후원의 손길을 보냈다.
구호활동을 전개한 또 한 사람이 하워드 마펫(Howard Moffett, 1917-2013)이었다. 초대 선교사 사무엘 마펫(Samuel Moffett, 1864-1939)의 4남으로 평양에서 출생하여 17세까지 한국에서 성장은 하워드는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고, 1948년 31세의 나이에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해군에 입대하여 군의관으로 봉사했다. 그는 이미 군 복무를 마쳤으나 다시 군 복무를 자원한 것이다. 9.28 서울 수복에는 평양까지 가서 한국교회 재건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인데, 의료 분야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아스피린, 페니실린 등 의약품을 제공하고 피난민을 구호했다. 의료 활동은 난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요청이었기에 그는 이런 필요에 응답한 것이다. 또 하워드는 의료 활동 외에도 교육·사회봉사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전개하였고, 전쟁 이후 고아와 난민, 전쟁미망인들에게 무료진료를 실시했다. 이런 그의 노력이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했다. 1953년 9월 제대 후 다시 의학을 공부하고 1956년 재내한하여 대구 동산병원에서 일했다. 1959년에는 동산병원장에 취임하여 일하는 등 학교법인 계명기독대학 이사장,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협동의료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45년간 한국에서 봉사했다. 불과 60병상이던 동산병원을 1000여 병상의 대형 의료원으로 발전시킨 것이 바로 하워드였다. 그는 2013년 6월 2일, 97세 나이로 미국 산타 바바라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데, 유언에 따라 아내 마가렛 마펫 여사와 함께 그해 9월 25일 계명대 동산의료원 은혜정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