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기나 긴 추석 연휴였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올해도 작년과 같이 종전과는 조금은 다른 명절을 보냈습니다. 이전만 해도 해외여행 떠나는 분들이 많았지만 이젠 그나마 기약 없는 얘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어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신분이나 직위를 가진 분들은 이번 추석에도 꼼짝없이 방콕하면서 밀렸던 드라마나 겨를이 없어 미처 읽지 못했던 대하소설 정주행을 시작했다가 자유로운 졸음과 평화로운 단잠에 빠져들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디 못 가서, 재미있는 거리들이 줄어서, 용돈 많이 못 받아서, 섭섭하기 짝이 없는 명절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특히나 이런 순간일수록, 더 사무치는 단어가 있지요. 바로 “가족”입니다. 이번 추석 기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던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맘때면 얼마나 더 아련할까요? 그렇지 않더라도 명절이 되면 왠지 고향 생각 절로 나고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유독 그립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추석 전날 어떤 권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셨기 때문에 그 이후로 처음 맞는 명절이 얼마나 쓸쓸하실까 해서였는데, 계속 통화 중이라 다음 날에야 가까스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무슨 전화를 그렇게 오래 하셨어요, 물으니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그렇게 전화들을 했다고 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본받으면 그만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자, 어서 어서 수화기를 드십시오!
그런데 한 20년 후가 되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질 전망입니다. 통계청의 예측에 따르면 2043년을 정점으로 한국의 가구 숫자가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2045년이 되면 총 2,200여만 가구 중(2020년 현재 2,150만 가구) 1인 가구가 809만으로 전체의 36.3%, 2인 가구가 21.2%, 이 둘을 합치면 즉 자녀가 없는 가구 혹은 가족이 전체의 57.5% 비율을 차지하고,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가족은 15% 남짓 될 거라고 합니다. 이미 “가족” 개념 자체가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을 맞이하고도 있습니다. 편부모가족, 이혼자가족, 재혼자가족이 늘어갈 뿐 아니라, 비혼자가족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결혼을 하고서도 아예 아이를 갖지 않는 소위 ‘딩크족’이라고 하는 부부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은 1987년에 이미 가족해체, 저출산, 다원화와 이주민 증가 및 이로 인한 초국적 결혼의 증대 현상이『위험사회』한 요소가 될 거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소중합니다. 시인 정호승은 “가족은 희망이다”라고 썼습니다. 노정혜는 “가족은 자석이다”라고 했고, 이기철은 “가족은 네 켤레의 신발이다”라고 했으며, 용혜원은 “하늘 아래 행복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가족은 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시편 128편의 기자는 가족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가족은 언제 들어도 싫지 않은 엄마의 잔소리입니다. 가족은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아랫목에 묻어두었던 따뜻한 밥과 같습니다. 가족은 나를 지탱하는 마지막 울타리입니다. 가족은 언약으로 시작해서 생명으로 이루어지고 희생으로 유지되는 곳, 이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의 연합과 교통을 닮은 것, ‘가장 기초적인 교회’입니다(김은혜).
가족의 개념 자체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국민 10명 중 7명이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데 동의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가족입니다. 대면(contact)이든 비대면(untact)이든 항상 가족과 함께 행복한 날들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ontact family).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시되 너무 슬퍼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추억을 한 아름 안고 그러하기에 더욱 풍성한 나날들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 한 가지, 꼭 기억하세요.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바로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내 평생 가장 중요한 시간은 내 가족과 함께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행복한 인생들을 사십시오, 행복한 가족들이 되십시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