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향력이란 단어를 힘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높은 곳에 있고, 우러러보는 곳에 있어야만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I는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편이 아니었다. I의 장래희망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신앙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그런 아이였다. 1학년 입학해서 진로상담을 하면서 “목사님 나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후 신학대학원에 갈려고 합니다. 꼭 좋은 대학에 가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부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었다. 장로의 아들이고, 성실하고 반듯한 녀석인지라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성실했다. 자습도 빠지지 않고, 수업 시간에 졸지도 않고, 정말 성실하게 공부를 했다. 1년의 시간이 지나고 2학년 5월에 I가 나를 다시 찾았다. 낙심한 표정으로 나를 찾았다.
“목사님, 속이 상합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목사님은 아시잖아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놀지도 않고 공부했고, 진짜 열심히 공부했는데 저는 성적이 안 오릅니다. 공부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은데...다른 친구들이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너처럼 하면 하버드간다’고 할 만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항상 4등급입니다. 속도 상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목사님 너무 힘듭니다.”
그 마음이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I의 몸부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I야, 네 맘 충분히 알 것 같다. 얼마나 속이 상하겠니.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자. 만약에 네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와서 성적도 1등급 나오고, 네가 가고 싶어 하는 SKY나 H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가서 목사가 되었을 때, 훗날 네가 나 다른 것 할 수 있었는데 목사가 되었어 하며 교만해질 수도 있을 가능성을 하나님이 미리 막아 주셨다고 생각하자. 네 생각대로 노력해도 안되었지만, 하나님이 너에게 최선의 것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고 생각을 하자.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지켜보자. 또 네 성적이 4등급이라 하더라도 너는 여전히 지금처럼 그렇게 공부하면 좋겠다.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 같다.”
그 후로도 I는 이전과 똑같이 공부했다. 박수를 쳐줄 만큼 성실하게 공부했다. 이 정도가 되면 성적이 올랐다가 되어야 ‘하나님이 일하셨다. 믿음의 사람이 잘되었다’ 할 수 있을텐데 I는 여전히 4등급이었다. 나는 안타까웠고 부모님들은 실망하셨다.
하지만 3년의 시간 속에 얻은 것도 많았다. 친구들에게 신뢰를 얻은 것이다. 인정을 받은 것이다. 지금 I는 기독교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제 신학대학원을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영향력은 이런 것이다. 앞서 있고, 보여줄 것이 있어야만 영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본,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은 것들을 보일 수 있는 것이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늘 이것을 강조한다. 다르게 살아라. 변두리로 가라. 손해봐라.
그리스도인의 대헌장이라고 하는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다. 소금과 빛이 의미하는 것은 같다. 세상 속에 스며들어서, 그리고 세상 속에 드러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영향력은 복음적인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향력의 의미 안에서 넓은 의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어보라고 하는 명령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을 통해 세상에 웃음을 주는 존재들로 키우고 싶다. 그리고 우리 학교 안에 있는 기독학생들이 기독학생의 선한 영향력을 회복해서 교실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 가운데 주변을 밝게 만드는 등대같은 존재들로 세우고 싶다.
어려운 시간 가운데 성탄이 또 다가온다. 다가오는 성탄에 세상을 밝히는 제자들이 하나 둘씩 더 늘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