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기쁨의 절반은 유보하세요
수 1:1~2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염원은 가나안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모세를 따라 애굽을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은 가나안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을 가나안에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스가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을 조망하게 하신 후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의 나이 일백 이십 세였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을 절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구별하셔서 모세 대신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하시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하셨습니다. 모세 때 홍해를 가르고 건너는 기적을 체험했다면, 여호수아는 요단강의 물이 멈춰서서 건너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도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셨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얻었고, 요단강 동쪽과 서쪽에 기업을 분배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사후에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가나안을 얻었을 때 이스라엘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 우리 땅이다!>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 기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뻐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었고, 애초부터 가나안을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생각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쁨의 절반은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얻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을 얻는 것도 중요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가나안을 얻은 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을 얻은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다면, 그때는 충분히 기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가나안의 삶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답게 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원수처럼 살 것인지, 이것이 아직 남아 있는 과제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을 따나 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들은 가나안에서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나안은 그 자체로는 복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그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애굽이나, 광야에서 멸망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멸망했다는 사실입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축복의 땅에서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을 얻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을 얻었을 때는 절반만 기뻐해야 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겸손히 기쁨을 뒤로 미뤄야 마땅했습니다.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지요. 저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면, 그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지요. 그때 가서 기뻐해야지요>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절반의 기쁨은 뒤로 남겨두었어야 합니다.
우리도 2022년을 출발하면서 여러 가지 목표를 세웁니다. 우리에게도 가나안이 있습니다. 모두 가나안에 도착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도착할 때 절반만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기뻐하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누릴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겸손합시다. 절반만 기뻐하고 나머지는 두려움과 겸손으로 남겨둡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시다. 그러면 언젠가 온전한 기쁨을 누릴 날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