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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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은 꿈을 잘 해석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꿈 해석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습니다. 그는 꿈을 잘 해석함으로써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처음으로 꿈을 해석한 것은 감옥에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인 보디발 장군의 아내를 겁탈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 후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감옥에 투옥되었고, 옥사장은 요셉으로 하여금 두 사람을 뒷바라지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꿈을 꾸었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아침에 이들의 근심을 알아차린 요셉이 질문했습니다. 창세기 40장 6~7절입니다.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두 사람은 요셉에게 자신들의 고민을 이야기했고, 요셉은 두 사람의 꿈을 들은 후 해석해 주었습니다. 꿈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의 꿈은 사흘 후 석방될 것이라는 고무적인 내용인 반면, 떡 맡은 관원의 꿈은 사흘 후 처형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흘 후 요셉이 해석한 대로 이루어져 술 맡은 관원은 복직했고, 떡 맡은 관원은 죽었습니다.

 두 사람의 꿈은 그들에게 주어진 미래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미래가 있고, 그 미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축복으로 여겨질 미래가 열릴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통의 미래가 주어질 것입니다. 자, 이 상황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해 봅시다. 꿈을 꾼다고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미래에 대해 약간의 암시를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꿈을 누가 해석해 주면 어떨까요? 물론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두 관원처럼 고민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은 요셉으로부터 해석을 들은 후 사흘 동안을 기대감에 부풀어 지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후 복직되었으니, 그는 인간적으로 볼 때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그러나 꿈의 의미를 아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떡 맡은 관원은 요셉의 해석으로 인해 사흘 동안을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 보냈을 것입니다. 해석이 없었다면 꿈의 의미를 몰라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후에 처형될 것을 알고 보내는 사흘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요셉의 해석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사흘 동안에 자신의 죽을 운명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깊은 고통 중에 몸부림치다가 속절없이 죽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해석의 한계를 생각하곤 합니다. 해석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해석은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이년 후 바로 왕이 꿈을 꾸었을 때, 요셉은 꿈을 해석하여 다가올 풍년과 흉년을 예고했고, 대책을 세워 애굽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게 했으니, 이때는 해석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경우엔 해석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죽을 자였는데 살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죽을 사람을 살게 하는 것, 망할 사람을 부흥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에 달린 게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차원의 은혜의 일입니다. 결국 꿈과 그 해석만으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을 붙잡고 인도하시고 방향을 바꾸시는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꿈이나 해석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인생을 바꾸고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고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2022년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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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해석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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