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선거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스무 번째 맞이하는 대통령선거가 있고, 여덟 번째 맞이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선거에 즈음하여 부쩍 시민들이 많이 하는 넋두리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뽑을 사람이 너무 없다는 푸념입니다. 특히나 이번 대통령선거전만큼 ‘차악(次惡) 논쟁’이 벌어졌던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시민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중적인 고민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체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투표의 기준이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인가?’라는 질문과 대답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부합하는 후보가 없는 실정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고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 사람을 보라’를 외치고 자연스럽게 부모와 자녀 및 형제와 자매간 혹은 교우들 사이에도 정치적 분쟁이 발생하여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합니다. 신자가 선거를 대하는 자세에 몇 가지 오해가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세속적인 선거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선택하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까? 대답은 ‘없습니다!’ 나름대로 일세를 풍미하고 각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와 식견을 가진 후보자들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기준이 어떠합니까? 성경 속에서 이와 같은 기준을 만족시킨 사례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직접적으로는 다윗 한 사람밖에 없지 않았던가요?(행 13:22) 더군다나 세속적인 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설령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유권자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정당의 이름으로 나오지 않은 이상 표를 의식해서라도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공식적으로 표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후보자 군(群)에서 찾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신자는 신앙이 아니라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견 그리고 인품이나 행동거지를 잘 판단해서 투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믿는 자들에게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선거를 두고 하는 신자들의 기도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신자들은 선거에 즈음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기도 응답의 결과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임스 스미스의 표현을 빌자면,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세속적 예전”입니다. 이러한 예전(禮典)에서 신자의 정치적 기도는 이제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즉, 이번에 선출되는 후보자가 변화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란 속담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신념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변화시킨다는데 있지 않습니까? 또한 선거판 자체가 변화하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조차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이행론”(Adam Przeworski)을 주창합니다. 신자들은 더욱 그런 기도를 해야 마땅합니다. 앞으로 더 이상은 ‘차악을 위한 선거’가 재현되지 않게 하시고, 좋은 후보자들이 많이 나와서 짐 월리스(Jim Wallis)의 말처럼 “공동선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정치적 주권을 굳건하게 신뢰해야 합니다. 세속 군주가 신자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 다리오와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왕들의 이름이 연이어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의 왕 헤롯이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처형하려다가 실패한 직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예루살렘에는 바울이 구제금을 전달하러 와 있었죠(행 12:13, 25). 훗날 로마서에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유대 왕이 그러했지만 로마의 황제라고 다를 바가 있겠느냐는 준엄한 선포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시대에도 같은 정치적 원리가 작동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가 선출되든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를 사용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