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열지 못하는 상자가 있다. 손에 닿는 곳에 있고, 언젠가 한 번은 열어야 하는데 머뭇머뭇 거리며 용기를 내지 못해 마음만 졸이며 만져보지 못하는 상자.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암에 걸린 환자를 인터뷰한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그 환자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분명 몸에 이상이 있었단다.
평소와 달리 쉽게 지치고, 소화는 계속 안되고… 이런 생활을 꽤 했었는데 병원을 쉽게 갈 수가 없었단다. 예상하고 있던 대로 암이라고 판정받을까봐. 이미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어디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것을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사실을 확정받는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무서워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100% 같을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집 막내는 어렸을 때부터 또래에 비해 머리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다. 키가 클뿐만 아니라 공놀이도 잘하고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면 늘 큰 차이를 두고 먼저 들어오곤 했다. 4살 때 간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유아체육시간에는 독보적인 활동량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런데, 큰 키에 비례해 말도 또박또박 하면 좋으련만, 말은 2살 아기와 비슷하게 했다.
막내 은샘이가 5살이 되었을 때이다. 새학기가 되면 어린이집 적응기간이라 일정 시간 부모와 함께 어린이집에 있어야 했다. 그 때 반에서 또래 친구와 은샘이가 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어떤 야무져 보이는 여자 아이가 은샘이에게로 가서 무엇이라 말하고는 곧장 선생님에게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 여자 아이가 선생님에게 “선생님, 그런데 저 키 큰 오빠(은샘이를 가리키며)는 말을 못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여자 아이는 또래에 비해 머리 하나가 더 있는 은샘이가 오빠같이 보였고, 그 오빠에게 말을 시켰는데 자기처럼 또박 또박 말하지 않자 말을 못하는 것으로 여긴 모양이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남자 아이들은 말하는 것이 늦을 수도 있지.’라며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위에 형들, 누나 모두 말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아이들이 없기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말은 곧장 했다. 문장도 또래 아이들과 비슷하게 구사했다. 그런데 문제는 발음이었다. 6살 때까지 2살 아이의 발음처럼 옹알거리듯 말하고, 받침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이쯤 되면 엄마인 나도 심각성을 느끼고 발음치료센터라도 가봐야 하는데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마음으로, 그 다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또 그 다음에는 두려워서 섣불리 센터를 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은샘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인 7살, 3월이 되었다. 문장은 어른처럼 사용하지만, 그 문장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엄마인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점점 “은샘이가 발음이…” “한번 검사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말들이 들려오면서 나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보면, “아픈 것도 아니고, 아예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서 발음 검사만 해보는 건데, 그게 뭐가 무서워 안가고 있을까”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몸에 분명이 이상 신호가 왔음에도 병원을 갈 수가 없었던 암환자처럼 나 역시 병원은 찾지 못하고 여러 이유로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고민만 하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물론, 그런 고민 끝에 결국에는 언어 치료사를 찾았고, 내가 무엇을 놓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결 방안을 들었다.
하지만 난 이번 일을 겪으며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실체도 없는 두려움에 두려움을 품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 두려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이 작은 발걸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큰 애가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막내가 7살 즈음 되자 이제 육아로부터 조금 여유가 생겼나보다라고 여기던 딱 그 순간에, 아이들로 인해 또 꼬꾸라지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나를 본다. 이걸로 보아,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이, 자녀 양육은 하나님으로 향하는 분명한 지름길임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