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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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 평전을 쓰면서 몇 차례 난관에 직면했다. 그의 삶의 여정을 추적하다 길을 잃기도 하고 앞뒤가 꽉 막힌 턴널처럼 출구를 놓치기도 한다. 불과 9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자료의 결핍을 실감하기도 한다. 그 중의 한 가지가 ‘부민정(富民町)교회’에 관한 것이다. 목회자의 길을 생각한 손양원은 경남성경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호주선교사 매견시 목사가 원장으로 있던 부산의 나환자 보호시설인 상애원(相愛園)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다. 사실 상애원교회를 담임하기 보다는 상애원에 속한 성도들의 지원을 받아 경남 동부 지방을 순회하며 교회를 개척하거나 연약한 교회를 돌보는 순회전도가 그의 임무였다. 상애원교회는 1910년 보호시설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이곳에 수용된 이들이 동물 사육, 새끼 꼬기 등으로 얻은 수입을 헌금했는데 이 돈으로 손양원 전도사를 순회 전도사로 일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손양원 전도사는 지역을 순회하며 일하던 중 1928년 11월에는 울산의 남창(南倉)교회를 설립하고, 울산의 방어진(方魚津)교회, 양산 원동(院洞)교회, 밀양 수산교회 등을 돕거나 말씀으로 후원했다. 그런데 이 기간 그가 상애원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면서 김교신 함석헌 등이 만들던 동인지 「성서조선 聖書朝鮮」을 교제로 성경공부를 인도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었다. 성서조선은 무교회 신앙잡지였기 때문이다. 1932년의 일이었다. 이 일로 ‘이단’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그는 결국 외압을 이기지 못하고 상애원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렇다면 그 후 그는 어디로 갔을까? 유일한 기록이 문신활이라는 상애원 수용자가 쓴 글이다. 손양원 전도사를 존경했던 그는 손양원이 교권주의자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애양원을 떠난 일을 애통히 여기면서 이렇게 썼다. “유무전변(有無轉變)은 부세(浮世)의 상사(常事)라더니 손 씨의 전변(轉變)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후 손양원이 감만동을 떠나 “쐬뙤(富民町)로 떠났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쐬뙤란 부민정을 의미하는데 문신활은 손양원 전도사가 부민정교회로 가려했던 일에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손 형이여,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아닌 것은 어디까지나 부인(否認) 주장하고 진리라면 만난(萬難)을 헤치며 절규 하던 그 입으로 사실을 부인하고 싶습디까?”라고 묻고 있다. 무교회주의자들의 서적을 이용한 일에 대하여 맞서지 않고 상애원을 떠나는 회피를 문신활은 부당한 처신으로 여기고 있었다.   

  상애원을 떠난 손양원은 ‘부민정교회’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부민정교회가 어디일까?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을까? 어떤 이는 부민정교회가 어디 있는 어떤 교회인지에 대한 탐색도 없이 ‘손양원은 그 교회로 가서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했다’며 소설을 쓰고 있다. 많은 이들이 부민정교회에 대해 모르고 있고, 현재도 부민정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손양원 관련 기록에서 부민정교회가 언급된 곳은 단 한 곳뿐이다. 손양원은 자신의 일기에서 순회전도 집회한 교회를 기록하고 있는데, 1938년 5월 22일 주일 ‘남부민정교회’에서 설교했다는 기록이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어디에 있는 교회였을까? 어떤 이는 부민정교회를 지금의 부산 서구 부민동에 위치한 ‘부민교회’로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부민교회는 1949년에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저런 궁리 끝에 항서교회를 부민정교회로 칭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본 일이 있다. 항서교회는 1905년 설립된 교회이고 부민정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문신활은 손양원은 “감만동을 떠나 항서교회로 가려던 목자의 말이었으니...”라는 또 다른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은 1936년 12월 8일 개최된 경남노회 제38회 노회 촬요를 통해서였다. “부산 남부민정교회는 항남교회로 명칭 변경하기로.”라는 한 줄 기록에 불과하지만 소중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손양원이 옮겨갔다는 부민정교회는 다름 아닌 남부민정교회인데, 지금의 부산 서구 남부민동 29번지에 위치한 ‘항남교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촬요에 기록된 교회명칭변경건이 본 노회록에는 언급이 없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정리하면 손양원 전도사가 감만동 상애원을 떠나 이적한 ‘부민정교회’는 다름 아닌 지금의 항남교회였다. 부민정교회는, 1935년 5일 15일 항서교회의 후원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이보다 앞서 설립되었음을 보여준다. 항남교회 기록을 보면 교회 명칭 변경일은 1936년 3월 25일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해 말 노회의 승인을 얻은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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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역사탐색] 부민정교회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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