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29(금)
 


홍석진 목사.jpg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를 데리고 철새도래지로 유명했던 을숙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차도 없을 때여서 택시를 타고 갔는데 도착해보니 참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아내가 무척 실망하는 바람에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원인이 되었을 낙동강 하구언 수문을 작년 이맘 때 35년 만에 상시 개방하기로 했고, 이제 일 년의 시간이 흘러 생태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유역본부 부산권지사가 22일 공개한 지난 1년간 생태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일단 하굿둑 상류의 회유(回遊)성 어류 분포 범위가 확대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연어는 무려 70km 이상 강을 거슬러 올라가 창녕함안보 하류에서 발견되었다 합니다(부산일보 2. 22). 어찌 물고기뿐이겠습니까? 막혔던 강물이 바다를 만나고 바다는 잠시라도 강물을 거슬러 여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둘은 또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럽겠습니까? 이제 신혼부부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철새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버린 재첩과 장어니 농어가 돌아오고 생태계가 다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물은 참으로 신비한 피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기야 창조주께서 만드신 것들 중에 경이롭지 않는 존재가 하나라도 있겠습니까마는, 물은 그 중에서도 특별하고 특별합니다. 그 특별함을 눈치 챈 사람들이 일찍부터 물을 논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Thales)가 물을 만물의 근원이라 주장하면서 서양철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도 바로 이 ‘물’을 묘사하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상선약수’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살 때는 물처럼 땅을 좋게 하고, 마음을 쓸 때는 물처럼 그윽함을 좋게 하고, 사람을 사귈 때는 물처럼 어짊을 좋게 하고, 말할 때는 물처럼 믿음을 좋게 하고, 다스릴 때는 물처럼 바르게 하고, 일할 때는 물처럼 능하게 하고, 움직일 때는 물처럼 때를 좋게 하라. 그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물이라도 고이면 썩기 마련이고 막히면 악이 되는 이치를 우리는 배웠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1992년 개봉되어 명배우 브래드 피트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만, 지금까지도 이 영화가 널리 회자되는 이유는 낚시를 소재로 찍은 그 아름다운 강물과 자연 그리고 그 안에 녹아있는 삶의 의미 때문입니다. 극중 아버지 맥클레인은 목사입니다. 하지만 두 아들 노만과 폴은 개성도 다르고 인생의 여정도 달라집니다. 안정적인 큰 아들과 달리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던 폴은 잠시 막혀버린 물처럼 방황하다가 결국 비참한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아들 장례식에서 아버지 목사님의 말씀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지요. “사랑하는 이가 곤경에 처한 순간, 도우려 하나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때로는 우리가 주려고 하는 것을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쓸쓸함과 그리움 그리고 그 모든 기억들을 하나로 합쳐서 흐르는 강물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물의 메시지를 두 차례나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한 번은 사마리아 우물 가 여인을 통해서인데,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었고, 또 한 번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물은 타는 목마름을 잠시 해갈하는 그런 정도의 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물은 변질되거나 부패하는 그런 종류의 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은 주님으로부터 나와서 결코 고이거나 막히는 법 없이 그를 믿는 자를 뚫고서 흘러내려, 언제나 땅을 좋게 하고 더러움을 씻어 내리고 모든 것을 이롭게 하지만 결코 다투지 아니하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의 물이요 생명의 물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존재들이 명멸합니다.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일들이 나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심령이 흐르는 강물과 같다면, 모든 것은 결국 그 안에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막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우리 안의 물줄기 혹은 사람들 사이의 수로가 주 안에서 시원하게 뚫리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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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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