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1(수)
 


임윤택 목사.jpg

그날 따라 유독 스산한 날씨였다. 잿빛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이 흐렸다. 정은이의 인스타그램엔 “이제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글과 함께 어느 아파트 옥상에서 찍은듯한 사진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정은이는 평소 밝게 잘 웃다가도 어느 순간 우울해지는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편이기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었는데.... 오늘 따라 학교 수업을 마친 후 귀가가 늦어 그렇잖아도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결국 일이 터져 버렸다.

정은이 어머니는 정은이를 임신한 사실을 모른 채 아버지와 헤어졌다고 한다. 이후 고민 끝에 정은이를 낳았지만 홀로 키우기 힘들어서 정은이가 5살 때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재혼을 했다. 정은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최상의 선택일 것 같았던 이 결혼은 두 모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외형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던 이 새 아빠는 정은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8살 때부터 중학교 1학년 14살이 될 때까지 5년간 지속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을 상습적으로 가해왔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정은이는 뿌리치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만약 엄마에게 말하면 모두 죽는다. 너만 조용히 하면 다 해결된다”는 그 말에 속아 그 오랜 세월을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버텨왔다. 결국 마음의 병이 되어 중학교 1학년 때 잦은 문제를 일으켰고, 이를 상담하던 교사에 의해 정은이가 당해 왔던 모든 일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일은 남편과의 관계가 힘들어도 아이들을 위해 버텨왔던 엄마에게도, 엄마와 가족을 위해 비참한 일을 당하면서도 참아왔던 정은이에게도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몹쓸 일을 저지른 새 아빠는 재판을 받아 교도소에 갔지만, 남은 가족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과 고통을 온 몸으로 부딪혀야 했다. 엄마는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술을 마시다 정은이에게 폭언을 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고, 정은이는 엄마에게 채워지지 않는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 방황하며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따따이가 정은이가 있는 아파트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희정 선생님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희정 선생님은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하고 있는데 둥지아이들의 친구같이 엄마같이 함께 하고 있는 고마운 분이다. 따따이는 조용히 정은이가 있을 곳으로 짐작되는 곳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희정 선생님이 맨 위층 복도창문이 여전히 열려있는 아파트 라인으로 올라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희정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정은이 만났어요. 손에 자해를 해서 피가 나고 있어요’

따따이는 조용히 데리고 내려 올 것을 당부한 후 한숨 돌렸다.

조금 뒤 아파트 입구 자동문이 열리고 창백해진 얼굴의 정은이가 희정 선생님과 함께 나타났다. 정은이는 따따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며 안겼다.

“죄송해요! 갑자기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죄송해요” “그래. 이제 괜찮아”

“죽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래. 집으로 가자”

순간의 위급함은 넘겼지만 앞으로 정은이가 감당해 가야할 시간을 생각하니 따따이는 더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둥지에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지난 주 병원에 가서 2주간의 약을 처방받아 왔는데, 둥지센터에 오고는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이 되자 스스로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복용하던 약을 먹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넌 며칠 동안 밥을 안 먹고 왜 배가 고프지? 라는 것과 똑같다. 배고프면 밥 먹으면 되잖아. 밥을 먹지 않고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왜 기운이 빠지지라고 하는 것처럼, 약을 먹지 않고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들지라는 것과 같다. 이 녀석아!”

“죄송해요. 이젠 안 그럴게요”라며 정은이의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따따이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정은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 손에는 지난 자해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둥지로 돌아와서 얼마지났을까. 갑자기 밖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뭐하는데??” “빨리 나와라” “왜 그러니?”

“정아가 좀 이상해요. 혼자 화장실 들어가서 30분 째 안나오잖아요”

아이들의 끊임 없는 성화에 하는 수 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정아는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정아를 살피던 따따이는 다리를 자꾸 의자 밑으로 숨겨넣은 것 같은 정아가 의심스러웠다. 정아의 바지를 들어올리자 종아리 전체에 커터칼로 수 없이 그어놓은 자해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죄..송,,해..요...” 아무 말 없이 연고를 발라주는 따따이에게 그 아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정말 죽고 싶어요”라는 말이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소리로 들려온다. “저 내버려 두세요. 내 맘대로 할거예요”라는 반항은 “저 좀 관심가져주세요”라는 애교로 들려온다. 잔뜩 흐렸던 날씨에 가려졌던 태양도 구름 사이로 마지막 햇살을 비추며 예쁜 석양과 함께 하루가 저물어간다. 오늘도 살려내야 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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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죽고 싶으니 제발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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