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해를 혈류증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혈류증이란 하혈을 하는 부인병입니다. 12년 동안 치료라는 치료는 다 받아 보았지만, 차도는 없고 오히려 점점 더 심해져갑니다. 이제는 병원비도 다 떨어지고, 병은 더 심해져가고, 그럴 때 그 절망감을 어찌 말로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당시 그런 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무언가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은 성 밖으로 쫓겨나서, 혼자 머물러야 했습니다. 사회(가족)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를 당하는 것입니다. 절망도 이런 절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얻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줄 알았는데, 완전히 끝난 줄 알았는데,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여인 어떻게 이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을까요?
포기하지 믿음 때문입니다. (27절)
나사렛 예수가 ‘능력과 이적’을 행한다는 소문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온 것입니다. 이 ‘듣고’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위대한 ‘구원의 역사’는 들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인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는 자마다 삶이 바뀔 것입니다. 왜요? 예수가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그것입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희망을 붙드는 것이 기적의 출발점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2. 믿음의 손으로 주님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28절)
소문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붙들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사실 여기에서 드러난 이 여인은 믿음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소극적이고, 아주 작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믿음으로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34절) 중요한 것은, 이런 허물투성이인 여인에게 주님이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여인을 받아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고, 그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찾으시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에 접촉이 일어났다고 모든 사람에게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작은 믿음이지만 나아갈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간절함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영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주님께 나아오지만, 어떤 모습, 어떤 마음으로 찾아왔는지를 다 아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고독과 슬픔 속에 얼마든지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더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를 보면, 혈루증 여인이 주님에게로 다가간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그 여인을 향해 다가가고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12년 동안 고통과 절망 속에 눈물 흘려야 했던 한 영혼을 향해 주님은 사랑의 발걸음을 옮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고통 속에 있는 자들에게 기꺼이 다가가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당신의 힘든 인생 한가운데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절대 무시하지 않으시고 무한한 사랑을 베푸십니다.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고자 하는 심정으로 나아온다면 주님은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여인을 향해 말씀하셨던 선포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되길 바랍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