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0(토)
 


김문훈 목사.jpg

그동안 성경 첫 장 설교를 많이 한 것 같다.

창1장의 하나님의 본심 네 가지, 수1장의 쓰임 받는 사람의 여덟 가지 특징, 삼상1장의 응답받는 기도의 매뉴얼, 시1장의 복있는 사람의 특징, 눅1장의 팔방미인, 행1장의 경계선 장애 극복.

최근에는 성경 마지막장이 은혜가 되었다.

마28장의 복음의 전달자, 행28장의 담대하게 거침없이, 그리고 오늘 욥42장의 말씀이다.

사람은 마지막의 모습이 중요하며, 뒷태가 고와야 된다. 유언과 같이 최후에 남기는 말씀이 중요하다.

욥42장은 성경 상에 가장 고난 받은 사람의 모습과 치열한 논쟁 후 마지막 결론을 기록하고 있다.

욥의 회개기도와 친구들을 위한 중보기도로 마무리된다.

김양재목사 말처럼 구원역사를 통해 내 삶이 해석이 되어지면 해결이 된다. 회개할 때에 회복되고, 항복할 때에 행복해진다.

욥과 친구들의 오랜 논쟁과 갈등으로 감정이 상했을 법도 한데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요15:13) 예수님의 사랑을 친구사랑으로 설명하고 있다. 친구사랑의 핵심은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109:4)

욥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할 때 영적회복이 되고, 관계가 회복되었다. 미움은 관계를 회복할 수가 없다. 사랑하고 축복할 때 문제가 봄눈 녹듯이 녹는다.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보다 갑절의 소유를 주셨다. 상황이 역전되었고, 상속권이 인정되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역전, 반전, 역주행의 기적이 나타난다. 내가 설치면 나홀로 일을 하지만, 내가 기도하면 주께서 역사하신다.

주께서 욥을 돌이키실 때 고난으로 인하여 멀어지고 오해하였던 가족이 회복되고, 이웃이 회복되었다.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욥42:11)

욥이 어려울 때에 비난하며 떠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의 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었다. 밥상머리, 베갯머리가 회복되고, 입맛, 밥맛, 살맛이 회복되고, 단잠, 숙면, 꿀잠을 자게 되었다.

그들이 욥을 슬퍼하며 위로하였으니 소통과 공감과 나눔이 회복되었다.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고리 하나씩을 위로금으로 주었으니 물권이 회복되었다.

부자는 티끌모아 태산이 되고, 십시일반이 모이고, 만 가지 은혜를 받고, 사방에 돕는 자들이 나타난다.


 

욥이 받은 최고의 축복은 말년의 복이다(욥42:12).

졸지에 당한 고난보다도 부인과 친구들의 정죄와 비난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 끔찍하고 황망한 시절에 마음으로 원망하지 않았고, 입술로 범죄치 않았다.

사사시대에 룻이 전반전은 엉망진창이었지만 후반전에 나중축복을 받았다.(룻3:10)

시골에서 어른들이 화투치기 하는 것을 볼 때 초장 끝발보다 후 끝발이 중요했다.

인생 이모작을 살면서, 하프타임을 지나, 배터리 충전하고, 성령충만, 은혜충만 받아야 결실의 계절에 늦은 비의 복을 받을 수 있다.

낙심천만한 오랜 고난과, 힘 빠지고 지치기 쉬운 인간관계 속에서 욥은 저력있게 버티었고 마침내 모년, 말년, 노년에 복을 받았다. 욥은 졸지에 일곱 아들과 딸 셋을 잃었지만, 말년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었다. 부인을 제외하고는 갑절의 복을 받았다. 자녀들의 미모와 기업을 볼 때 명성이 회복되었다.

주일학교에서 다음세대 일꾼들이 새벽이슬같이 일어나야 된다. 정치, 경제, 국방, 외교, 교육, 문화, 사회, 목회, 선교사역에 준비, 예비, 겸비, 유비무환의 지도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리라.

도산 안창호선생님은 인재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네가 인재가 되라고 하였다.

욥은 오랜 고난의 세월을 버티어서 140세를 장수하였고,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으며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다(욥42:16~17).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고, 황충이 해하지 않고, 때를 채웠다. 나이가 차서 죽는, 충만의 복을 받았다. 물이 끊어지지 않고, 막히지 않고 연결이 되었다. 오래오래, 길게길게, 곱게곱게, 넓게넓게 복을 누렸다.

요셉이 7년 대풍년에 흥청망청하지 않았고, 7년 대기근을 잘 버티었다. 모세는 애굽, 바로의 궁궐에서 40년, 미디안광야에서 40년, 출애굽 40년, 오르막내리막 길을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잘 감당하였다. 아니, 그 변덕스러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께서 끝까지 이끌어 주셨던 것이다.

욥의 전반전은 눈물과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것마저 후반전을 위한 눈물의 씨앗을 심는 과정이었다.

세월이 무섭게 빨리 지나간다. 누구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자기에게 남은 세월을 기억하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버티고, 견디자!

주께서는 남은 자를 통하여 구원역사를 이어 가신다. 현재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늦은 비의 복을 대망하면서 살아 버티어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간다. 늦은 비가 내려야 곡식이 익는다. 찬 서리가 내려야 가을걷이가 끝이 난다. 성경에는 이른 비가 우리나라의 늦은 비이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시간 개념이 크게 혼돈하게 되었다. 골든타임, 하프타임, 파이널타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알 수가 없고,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법이다.

이 세상 끝날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갈, 저 천국이 예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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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늦은 비의 복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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