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무엇일까요? 가을입니다. 한 설문조사 결과 연령 불문하고 응답자의 44.2%가 선호하는 계절로 가을을 꼽았다고 합니다(2014.10. 한국갤럽조사연구소). 그래서인지 가을 하면 유독 아련히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많습니다. 국화, 코스모스, 단풍, 낙엽, 황금들판, 보름달, 추석, 가족, 천고마비(天高馬肥),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가을 전어(錢魚), 그리고 독서의 계절, 그렇습니다. 누군가 ‘가을은?’이라고 물으면 자기도 모르게 ‘독서의 계절’이라고 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을 시간도 여유도 많이 부족한 계절이 가을이라는 사실이 함정입니다. 직장인들은 연말 인사고과에 반영될 실적 올릴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분주하고, 주부들은 추석 명절 준비하느라 정신없고, 수험생은 수능시험 때문에 독서란 말 자체가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하지만 독서는 환경이 아니라 습관이 더 중요합니다.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는 『습관의 힘』에서 바이러스성 뇌염을 앓고 기억을 잃어버린 ‘E. P.’라는 환자를 통해 이루어진 ‘기억은 사라져도 습관은 남는다’는 발견을 소개합니다. 이를 독서에 적용한다면, 계절이나 환경과 관계없이 어떻게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느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이 쓴 『독서의 역사』 첫 페이지는 위대한 독서가들 사진이나 그림을 18장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시각장애인이었던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66)가 누군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경청하는 사진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독서를 습관적 행동이 되게끔 만들어주는 선한 동기와 열망과 공감대로 기능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도 책읽기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를 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책을 손에 쥘 때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려 할 때처럼 행동하라. 그리고 그대들이 책 읽기를 끝낼 때면 책장을 덮고 하나님의 입을 통해 나온 그 모든 단어들에 감사를 표하라. 그 이유는 그대들이 하나님의 영역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발언입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도 아마도 비슷한 취지로 1966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Wir brauchen doch-die Bibel und die Zeitung.” 직역하자면 “우리는 성경과 신문 양자를 다 필요로 한다”가 되겠지만 이보다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경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명언입니다. 어디 신문뿐이겠습니까? 책도 읽어야 하고, 때로는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대자연도 읽어내야 하고, 때로는 남들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사람들도 읽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특별히 부여된 사명과 책임이라는 생각입니다.
197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소웨토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백인 정권의 강압적인 교육정책에 반발한 소웨토(Soweto) 지역 흑인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로 600명이 죽고 수천 명이 도피했던 사건입니다. 이어진 암울한 80년대를 거쳐 1994년 마침내 넬슨 만델라가 집권하는 흑백연합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현대사를 통해 종교적 죄의식과 역사적 부담감으로 고민하던 작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접근하는 방식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이러한 작가군 중에서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가 1991년, J. M. 쿳시(Coetzee)가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오면 올해에는 한국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까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성인 1인당 평균 독서량 9.2권(월 0.76권), 기독교인 중 1년에 신앙서적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60%가 넘는 나라입니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을 시간도 여유도 많이 부족한 계절이 가을이라는 사실이 함정입니다. 직장인들은 연말 인사고과에 반영될 실적 올릴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분주하고, 주부들은 추석 명절 준비하느라 정신없고, 수험생은 수능시험 때문에 독서란 말 자체가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하지만 독서는 환경이 아니라 습관이 더 중요합니다.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는 『습관의 힘』에서 바이러스성 뇌염을 앓고 기억을 잃어버린 ‘E. P.’라는 환자를 통해 이루어진 ‘기억은 사라져도 습관은 남는다’는 발견을 소개합니다. 이를 독서에 적용한다면, 계절이나 환경과 관계없이 어떻게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느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이 쓴 『독서의 역사』 첫 페이지는 위대한 독서가들 사진이나 그림을 18장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시각장애인이었던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66)가 누군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경청하는 사진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독서를 습관적 행동이 되게끔 만들어주는 선한 동기와 열망과 공감대로 기능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도 책읽기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를 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책을 손에 쥘 때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려 할 때처럼 행동하라. 그리고 그대들이 책 읽기를 끝낼 때면 책장을 덮고 하나님의 입을 통해 나온 그 모든 단어들에 감사를 표하라. 그 이유는 그대들이 하나님의 영역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발언입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도 아마도 비슷한 취지로 1966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Wir brauchen doch-die Bibel und die Zeitung.” 직역하자면 “우리는 성경과 신문 양자를 다 필요로 한다”가 되겠지만 이보다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경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명언입니다. 어디 신문뿐이겠습니까? 책도 읽어야 하고, 때로는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대자연도 읽어내야 하고, 때로는 남들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사람들도 읽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특별히 부여된 사명과 책임이라는 생각입니다.
197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소웨토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백인 정권의 강압적인 교육정책에 반발한 소웨토(Soweto) 지역 흑인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로 600명이 죽고 수천 명이 도피했던 사건입니다. 이어진 암울한 80년대를 거쳐 1994년 마침내 넬슨 만델라가 집권하는 흑백연합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현대사를 통해 종교적 죄의식과 역사적 부담감으로 고민하던 작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접근하는 방식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이러한 작가군 중에서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가 1991년, J. M. 쿳시(Coetzee)가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오면 올해에는 한국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까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성인 1인당 평균 독서량 9.2권(월 0.76권), 기독교인 중 1년에 신앙서적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60%가 넘는 나라입니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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