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창단된 늘노래음악전도단은 부산을 넘어 한국 기독교음악을 이끌었다. 그룹사운드로 활동을 한 첫 전업 크리스천밴드로, 색소폰, 키보드, 기타, 베이스기타, 드럼 등을 사용해 당시 한국교회에 큰 충격을 줬다. 늘노래음악전도단 단장으로 시작해 기독교 문화사역을 이끌어 온 유의신 목사가 올해 80세를 맞아 다음세대로 사역을 넘겨주며 후계자 5인을 위촉했다.
유의신 목사를 만나 그동안 해 온 사역 및 소감에 대해 들었다.
Q. 목사님 사역에서 ‘늘노래’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늘노래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입니까?
A. 제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1973년 귀국해, 1974년 이사벨여고로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부산에 와서 5명의 대학생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모임이 확장되어 목견(牧犬)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년 과정의 목견운동을 하면서 많은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양정중앙교회에서 교사와 고등부 학생으로 만났던 노문환(목사)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노문환 목사는 당시 야간업소에서 연주하고 있었는데, 함께 제자훈련을 하며 업소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노문환 목사와 함께 일하며 업소에서 기타를 치던 이광무 목사 역시 일을 그만두고 찬양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늘노래음악전도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름이 길어서인지, 사람들이 ‘늘노래선교단’이라고 불렀지만 정식 명칭은 ‘늘노래음악전도단’입니다. 제가 단장을 맡으며 함께 사역 현장을 다녔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알게 된 찬양을 소개해 번안하기도 하고 기존 찬송들을 편곡하기도 점차 단원들의 자작곡들이 만들어 지면서 음반도 10여개 출시했습니다.
늘노래, 늘노래TWO, 늘노래뉴젠 등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현장사역에 파송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함께 사역하고 또 자기의 길을 찾아 떠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2007년 공식적 현장 활동 및 사역을 중단했고, 2008년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를 개소했습니다.
Q.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도 오랜 시간 다양한 활동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전도아카데미를 꾸준히 개최해 온 것으로 압니다.
A. 네 맞습니다.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했던 사역은 ‘음악’이라는 통로를 통해 전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를 통해 전도의 통로를 넓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강사로 모셔 어떻게 전도할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에 전도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카데미라는 명칭에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계셔서 이후에는 세미나라고 변경했습니다. 공연기획, 음악, 영어, 매직, 명화, 스마트폰, 영화, 독서, 북카페, 태권도, 요리, 걷기, 뮤지컬, 버스킹, EM으로 전도하기 등 48회 세미나를 개최하며 다양한 전도의 통로를 제시했습니다.
또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정기간행물 ‘작은터 큰나라’를 발간했습니다. 종이와 웹을 통해 배포하며 사역 보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495호를 발간해 왔습니다.
Q. 또 교목으로 오랜 시간 캠퍼스 사역을 해 오셨는데, 어떻게 캠퍼스 사역을 하게 되셨습니까?
A. 2002년 동서대 설립자이신 고 장성만 목사님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 목사님께서 동서대 교목으로 2년간 재직해달라는 요청을 하셨고 저는 응했습니다. 그런데 2년 후 장성만 목사님께서 “당신은 어떻게 악플이 하나도 없어?”라며 지지해 주셨습니다. 기독교대학인 동서대학교에는 채플이 있는데 학생들이 채플을 들어야하니, 학기말에 실시하는 강의평가에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플이 하나도 없다며 좋은 평가를 해주신 덕에 생각지도 못하게 오랜 시간 캠퍼스에서 청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캠퍼스 사역을 하며 느낀 것은 의외로 학생들이 직접적이고 단순한 복음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년간 캠퍼스 사역을 하며 외국인 유학생들과 대학생들의 언어 학습에 도움이 되기 위해 영어, 일어, 중국어로 채플을 열기도 했습니다. 일어, 중국어는 사정상 이번 학기에 운영이 중단되었지만 영어 채플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 다양한 영역에서 사역을 해 오셨는데, 목회도 하셨지요?
A. 늘노래음악전도단이 활발하던 시절 월 69회의 집회를 다닌 적도 있습니다. 결국 1987년 무리한 탓에 필드를 떠나 쉰 적이 있습니다. 선교단 활동을 하면서 교회 밖을 다니다보니 기존 교회의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역을 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역교회를 비판한 네가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먹고 살기 위한 교회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찬교회를 1988년 개척했습니다. 초기에는 아내가 운영하던 유치원을 주일 예배 처소로 사용했습니다. 믿음찬교회는 규약에 교회 재정에 관한 부분을 명시해 놨습니다. 교회 수입의 10%가 교역자 사례비, 40%는 대외선교비, 50%는 대내 교육관리비로 사용합니다. 교인들의 수가 많으면 문제가 없지만, 작은 교회이기에 교역자 사례비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저는 다른 사역도 겸해서 괜찮았지만, 교회 후임자를 청빙하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런 교회의 뜻을 이해하고 수용해주신 분을 만나게 되어 현재는 후임 목사님이 훌륭하게 목회하고 계십니다.
Q. 지난 17일 후계자를 세우셨다고요?
A.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목견운동과 늘노래음악전도 사역으로 시작하여 문화전도사역으로 지경을 넓히며 작금에 이르렀습니다. 아울러 목회와 학원선교의 영역까지 열어주셔서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달려갈 길을 다 마치기 전에 다음주자를 5개 분야로 각각 세웠습니다. 이에 흔쾌히 승낙하고 따르기로 한 5분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9월 17일(주일) 늘노래세미나실에서 ‘작은터 큰나라 작은 불씨 5인 위촉 감사예배’를 가졌습니다. 다음세대 불씨 5인 위원은 ▲연구소사역: 김정주 목사(기쁨찬교회, 늘노래 이사) ▲캠퍼스사역: 정택진 교수(동서대, 영어채플 교목) ▲교회사역: 이규원 목사(들에핀믿음찬교회) ▲음악사역: 김일영 교수(Ten Sound 대표, 백석대) ▲문화사역: 전혜정 대표(Via the Cross 대표, 그랜마하우스 대표)입니다. 특히 당일 오셔서 권면말씀으로 섬겨주신 지원기목사(금정교회)는 목견운동 창립 맴버이기도 합니다.
Q. 향후 계획이 있으십니까?
A. 제 평생 모토이기도 하지만 꿈, 계획이 없습니다. Day by Day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이런 사역을 하고자 꿈 꾸고 계획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상황에 하루 하루 살다보니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1년 교회를 은퇴하고, 2022년 동서대를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다음세대 5분에게 바통을 넘겼습니다. 다만 제게 남은 숙제가 있다면 부산지역 기독문화사역자들이 활발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