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6(금)
 


임윤택 목사.jpg

“도움 따윈 필요없으니깐 제발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세요. 왜 저를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을 해요? 그딴 감정들도 필요없으니깐 낭비하지 마시고요. 저 말고 다른 애한테나 그러세요. 내가 어떻게 살든 내 인생이니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이젠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요. 알아서 살거니까요”

 

얼어붙은 땅도 녹아내리고 꽃이 피며 생기가 돋는 어는 봄날. 따따이는 소년원에서 온 편지를 한 통 전해 받았다. 편지를 보낸 아이는 지원이였다. 지금껏 둥지를 거쳐간 수 많은 아이들 중 가장 마음이 아린 녀석 중 하나이다. 지원이의 부모님은 지원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였다. 사업실패 후 가정을 외면한 채 바깥을 떠돌며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아버지와 이단 종교에 빠져 광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다. 지원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언니 2명과 함께 생활했다. 가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는 딸들에게 폭행을 휘둘렀다. 이를 못 견딘 큰 언니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자 독립을 선언하고 서울로 직장을 구해 먼저 떠나버렸다. 고등학생이던 둘째 언니마저 가출하여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면서, 아직 중학생으로 어렸던 지원이만 홀로 남았다. 거의 매일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들어오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만큼 너무 싫었다. 결국 지원이도 가출을 하기 시작하였고 거의 1년 정도 가출팸들과 생활하며 지내다가 돈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쳐 먹기도 했는데 결국 발각되게 되었다. 

 

그 절도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따따이가 국선보조인을 맡으며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지원이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지원이는 보호자 없이 홀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고 판사님은 안정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학교도 다시 다닐 수 있도록 둥지센터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국선보조인이었던 따따이와 함께 둥지센터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가출이 습성화된 지원이는 센터를 이탈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시설내처우인 6호 처분을 받고 아동치료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전화시간에도 지원이는 전화를 걸 사람이 없었다. 그때마다 지원이는 생각나는 사람이 따따이 밖에 없었다. 그렇게 따따이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거렸다. 그리고 6개월간의 6호 처분 이후 따따이는 지원이를 위해 따로 원룸을 마련해주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잘 지내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서도 지원이는 도망가 버리고 다른 비행에 연루되다가 보호관찰소에서 구인장이 발부되어 다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재판을 받아 가장 중한 10호 처분으로 2년간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잔뜩 독이 올라 원망과 저주가 가득한 말을 편지에 가득하게 써서 따따이에게 보냈던 것이다. 따따이는 한 순간 그 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만 품고 시간을 흘러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태풍 경보까지 내려진 날 오후. 따따이에게 다시 편지가 왔다. 자기 인생에 나타나지 말라며 원망을 쏟아낸 지난 번 편지 때문인지 따따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원이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어....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먼저 죄송해요. 지난 번 편지에 너무 모진 말들만 썼죠. 정말 힘든데 쏟아낼 때가 없어서 그랬나봐요. 솔직히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 편지 받고 많이 울었어요.... 저 여기 오면 아무도 찾아와 줄 사람이 없다는거.. 많이 힘들고 외로울거라는거 아시잖아요? 그렇게 목 맸던 친구들은 8개월 째 소식이 없고 면회 오는 사람도 없고 혼자 버티려니깐 너무 버거워요. 저 진짜 잘못 살았나봐요.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간 지원이의 편지를 읽다가 따따이는 그만 마음이 멎는 듯 했다.

“따따이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했었어요. 가족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모질게 굴어도 따따이는 달래주실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따따이는 저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은혜를 갚지도 못할망정 상처를 드려서 죄송해요. 제발 저 여기서 혼자 힘들어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따따이. 다시 아빠해주세요... 작년에 가족도 안 챙겨주던 제 생일날 바쁘신데 와주시고 그랬는데.. 아빠보다 더 아빠같이 생각했었는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죄송해요. 아빠. 그리고 보고 싶어요”

 

따따이는 진하게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 봤다. 어제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우려한 것보다는 큰 피해가 없이 비켜갔다. 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에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따따이는 모진 비바람을 겪은 지원이의 짧은 인생 같아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번 그렇게 심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편지 한 장에 다시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이제 태풍이 지나갔으니...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겠지. 다음 주엔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다’ 이제 며칠 후면 지원이의 생일. 다시 서글픈 축하의 노래라도 불러주러 가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의 원문이나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책 “다시 아빠해주세요”(엠마우스출판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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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다시 아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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