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본고는 백양로교회(담임목사 김태영)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디아코니아부산에서 마련한 디아코니아 지상포럼의 발표 내용을 전재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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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인문학이 왜 필요할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리해 두어야겠다. 우리가 인문학(人文學, Studia Humanitatis)이라고 할 때 이 말은 문사철, 곧 문학과 역사 철학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인문학이라는 말은 흔히 자연과학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을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할 때 인문학이란 문학이나 역사나 철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다. 그 광범위한 의미란 바로  인간을 위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문학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은 문학이나 역사나 철학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포괄하는 보다 광의의 인간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자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자연과학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다움을 추구할 수 없다. 과학이나 기술이 장인(匠人) 혹은 기술인(技術人)을 양성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다움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전공에 앞서 인문학 관련 강좌를 듣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공과대학이 짧은 기간에 전문적인 기술인을 양성한다는 목표아래 학부 1학년 때부터 자연과학 분야만으로 구성된 교과를 운영한바 있으나 몇 년이 못가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공과목을 가르치기 전에 인문 혹은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교과를 개편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의학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의사가 과학과 의료기술로만 무장되어 있다면 로버트와 같은 의료인이 되고 말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기에 의과대학에도 의무적으로 인문학교실을 두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대학교육은 물론이지만 인간 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그런데 근년에 와서 인문학이 천대를 받고 있다. 문학이나 역사나 철학을 공부해도 취업에 어렵고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이다. 사회전체로 볼 때 자연과학이나 공학이나 의학이 발전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 인문학적 토대가 없으면 건실한 사회가 될 수 없고 어쩌면 인간 상실의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인간 없는 과학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현제 우리나라에서 인문대학은 인기가 없어 폐과되거나 다른 학과와 통폐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인간 삶의 근간을 이루는 인문학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고전이 강조되고 고전 읽기도 권장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두 가지로 정리해 두고자 한다. 첫째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설교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런 말이 있다. “성경만 아는 사람은 성경도 모른다.” 성경과 성경이 기록된 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언어, 문화, 역사, 사상, 종교 등 인문학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칼빈은 1559년 6월 5일 제네바 아카데미를 개교했을 때 신학예비과정을 개설했다. 성경과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인문학적 소양을 터득하게 하기위해 신학예과를 설치한 것이다. 제네바 아카데미의 신학 예과 과정에서는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등 성경 언어만이 아니라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하게 했고, 중급과정에서는 호머, 키케로, 버질, 크세노폰, 폴리비우스 등의 작품을 읽게 했고, 고급과정에서는 키케로나 데모스테네스의 웅변술 등 수사학을 공부하게 했다. 즉 고전과 고전어, 철학과 변증,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하게 한 것이다. 이런 인문학적 바탕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바르고 풍요롭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인문적 소양의 무지 때문에 성경을 왜곡하거나 곡해하고, 독단적으로 혹은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하거나 비 논리적인 독단적인 해석하는 경우는 대체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만 아는 사람은 성경도 모르게 된다.

  1830년대 인도로 갔던 서구 선교사들이 직면했던 문제는 성경과 기독교를 가르치기 전에 문자와 언어, 기초교육이 없이는 인도에 건실한 복음주의적인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세워 먼저 글자와 문자부터 가르쳤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인간과 사회, 성경과 기독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근대의 선교학교(mission school)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면 무지와 억지, 반지성주의에 빠지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인문학은 인간, 혹은 존재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문학은 구원받아야 할 전도(선교)의 대상인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게 만들어 준다. 인문학의 대상은 인간이고, 인문학의 본질은 그러한 인간성을 탐구하는 데 있다. 인문학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해 왔기 때문에 인문학(人文學)은 사실은 인간학(人問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과 인간의 본질, 인간 삶의 환경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지식이지만 특히 목회자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 대상은 인간 곧 ‘사람’이다. 따라서 목회를 잘하려면 사람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열심히 기도하고 심방하고 설교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도의 대상인 인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 인문주의자였던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서두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De cognitione Dei)은 우리(인간)를 아는 지식(De cognitione hominis)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이른바 이중지식을 다루면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고, 우리 인간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을 인간에 대해 사유하고 질문하면서 인간다움 삶을 살게 하는데 유용한데,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의미와 목적은 오직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인문학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해 주고,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의존적 존재라는 점을 알게 해 준다는 점이다.

 

 

3. 기독교와 인문학

 

  기독교와 인문학을 대립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15세기 이후의 인문학(인문주의) 운동은 종교적인 운동이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의 토대가 되었다. 르네상스 운동기의 인문주의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과 기독교를 대립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개혁사상의 토대를 형성했던 사람들은 다 르네상스 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인문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루터도 그러했고 칼빈도 그러했다. 인문주의 교육이 개혁운동의 바탕이 된 것이다. 인문주의의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인물이 츠빙글리였다. 그는 사실상 종교개혁자이기에 앞서 인문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혹은 인문학과 기독교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가진 이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인문주의를 서구에서 휴머니즘(humanism)이라고 하는데, 이를 인본주의(人本主義)로 해석한다면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인본주의는 인간중심주의로서 신중심주의와 대조적인 의미로 받아드려지는데,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인문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인문주의, 곧 휴머니즘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리스와 로마의 언어와 문학에 강조점을 둔 교육의 형태였다. 곧 지금의 인문학이었다. 이 시대의 인문학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 라틴어 ‘ad fotes,’ 곧 ‘원천에서’ 혹은 ‘원천으로부터’였다. 즉 인문주의란 “원래의 자료들로 돌아가자(go back to the original sources)”는 슬로건으로 요약될 수 있는 문화 운동이었다.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개혁자들은 그 ‘원천’을 ‘성경’으로 보아 오직 성경, 곧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것이다.

 

  정리하면 인문학(humanities)을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나 인도주의(人道主義)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취급하며 사색하고 질문한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적 소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과 사회를 건실하게 성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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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기독교인들에게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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