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을 앞두고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거나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는 백마가 아니라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 전에 이 일을 예언하였습니다.(슥 9 : 9) 오늘,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를 살펴봅시다.
1.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구약의 예언된 바에 따라 움직이고 계십니다.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말씀에 대한 순종의 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너무 많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말씀이 무엇이라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쓰여지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말씀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2.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세요. 뒤뚱거리는 어린 나귀 위에 앉으신 주님, 얼마나 볼품없는 초라한 모습입니까? 세상의 왕은 가능한 자신이 가진 권력을 극대화합니다. 반면 그리스도는 왕이신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왕 중의 왕이 오히려 더 작아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능력의 길은 겸손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겸손하게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겸손히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본성이 원하는 것하고는,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우리의 겸손한 섬김이 누군가에게 쉼을 줄 수 있습니다.(막 10 : 45)
마지막으로, 주의 일에 쓰임 받았던 나귀 주인의 순종을 살펴봅시다.
나귀 주인은 주께서 쓰신다는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원어로 ‘아도나이’인데, 하나님의 주권, 권한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나귀 주인의 것을 가져간 것이 아니고, 그동안 주님의 것을 나귀 주인이 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쓰고 있으면 착각하는 것은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주님에게서 나왔고, 주님의 의해서 돌아가고, 주님께로 돌아갑니다.(롬 11:36) 여러분, 우리는 소유의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잠시 맡았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는 이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한 영혼을 작정하는 것, 내 영혼의 VIP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여, 그가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섬기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겸손한 순종의 섬김을 통해, 주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