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8(목)
 


성상철 교수.jpg

미국에서 살 때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런닝머신을 들여 놓았다. 그것만 있으면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살도 못 빼고 머신은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기 위해 머신에 올라갔을 때 제일 힘든 점은 지루함이다. 절박함이나 목표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좁은 실내공간에서의 운동은 답답하기까지 했다. 비겁한 변명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30분정도 걸으니까 몸이 데워지고 근육과 관절이 부드러워 지면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지루한 30분이 문제였다. 이것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지속적인 운동이 가능하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인가는 시작하면 얼마가지 않아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다. 나의 전공인 음악분야를 예를 들면 아이들이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면 바이엘이라는 교본으로 시작을 하는데 반쯤 진도가 나가면 힘들어 하면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름 힘든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포기하게 된다.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어렵고 힘든 고비를 수도 없이 견디고 넘어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겨내야만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성악도 가르쳐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결과를 얻고자 한다. 바꾸어 말하면 길게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오래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열매도 지난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지 않고 얻을 수 없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여정가운데 이것은 늘 경험해 온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지속적이고 꾸준함이란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봐도 능히 느낄 수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푯대를 향한 우리의 걸음이 바르고 꾸준하였는지, 어렵고 힘들어서 주저앉아 걷기를 포기한 적은 없었는지, 또 지금 나는 인내하고 참으며 지속적으로 푯대를 향한 걸음을 계속하고 있는지, 아니면 안개 속에 길을 읽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아보며 점검해 봤으면 좋겠다. 시대의,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도 될 만한 세상이 아닌 거 같다. 찬송과 예배가 강력하게 살아나서 힘들고, 악하고, 유혹이 많은 이 땅위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소망하는 푯대를 향한 걸음에 멈춤이 없고 변함없는 꾸준함으로 쉼 없이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노래가 우리 입술을 통해 끊임없이 고백되고 선포되어지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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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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