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4(금)
 
홍석진 목사.jpg
  지난 10월 1일 흥미로운 보도가 있었습니다. 하루 전인 9월 30일 네덜란드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가 그린 초상화 두 점을 공동으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예트 부세마커(Jet Bussemaker) 문화장관은 현재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유한 이 그림들을 양국 정부가 절반씩 부담해서 1억 6,000만 유로(약 2,120억 원)에 구입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에서 순회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공중(公衆)을 위해 미술품을 산다는 사실도 생소하고, 그것도 구매 경쟁에 나섰던 두 나라가 대의(大義)를 위해 국적을 초월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합니다만, 보다 뜻 깊은 의미가 이번 미담(美談)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각기 210×135cm, 210×134cm 크기의 두 작품은 결혼식을 앞둔 예비 부부 마르텐 솔만스(Maerten Soolmans)와 오프옌 코피트(Oopjen Coppit)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데, 그림이 그려진 1634년은 렘브란트가 정든 고향 레이든(Leiden)을 떠나 암스테르담(Amsterdam)에 정착한 지 4년째면서 그곳에서 만나 지극히 사랑했던 여인 사스키아 아위렌부르크(saskia Uylenburg)와 약혼한 지 1년 만에 백년가약을 맺은 해이기도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생활도 안정된 렘브란트는 이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수난’ 연작(連作)-「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1633),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1633), 「그리스도의 승천」(1636), 「그리스도의 매장」(1639), 「그리스도의 부활」(1639)-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렘브란트가 태어날 무렵 네덜란드 개신교회는 레이든 대학에서 가르쳤던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의 영향으로 예정론을 부정하는 ‘항의파(remonstrant)’가 일어나 내홍(內訌)을 겪고 있었습니다. 1618년 도르트레히트(Dortrecht)에서 개혁교회 첫 국제회의가 열렸고, 개혁파들은 아르미니우스 파를 정죄하고 ‘도르트신경(The Canon of Dort)’를 채택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과정에서 1609년부터 종교적 핍박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해 와 있던 영국의 청교도들이 1620년부터 1629년까지 대거 신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이처럼 화가 렘브란트는 종교개혁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시간과 장소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1642년, 지금은 렘브란트 불세출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야경」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 쏟아졌던 혹독한 비판과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의 죽음이 그를 은둔과 파멸로 내몰았습니다. 1656년 마침내 그는 파산했고, 1668년 9월 남아있던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 티투스마저 잃은 후, 이듬해인 1669년 10월 4일 암스테르담 운하 끝자락에 위치한 호젠흐라흐트(Rozengracht)라는 마을 작은 집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생각할 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재산도 명예도 가족도 건강도 남아 있지 않았던 1668년, 렘브란트는 262×206cm의 걸작(傑作) 「탕자의 귀환」을 그렸습니다. 머리털도 외투도 없이 낡아빠진 옷에 찢어진 신발과 상처투성이의 발바닥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긴 둘째 아들은 차마 얼굴도 보여주지 못한 채 등을 지고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돌아온 아들의 어깨와 등을 만지며 거의 감긴 눈으로 측은하게 바라보는 노(老) 아버지의 모습이 애틋해 보입니다. 1669년, 렘브란트는 마지막으로 98×79cm의 「아기 예수를 안은 시므온」을 남겼습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렘브란트의 하나님』, 안재경, 홍성사, 287에서 인용). 돌아온 탕자처럼, 시므온처럼, 그가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긴 지 345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프랑스에서 네덜란드에서 나란히 전시될 솔만스와 코피트의 초상화처럼, 그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천국에서 주를 그리며 서 있겠지요. soli deo gloria!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사칼럼] 어느 개혁주의 화가의 일생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