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하나님의 긍휼이 머무는 곳
누가복음 1장 50절
나사렛의 처녀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수태고지를 받았습니다.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마리아는 늙은 친척 엘리사벳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벳을 만난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 중에 다음 구절이 있습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눅 1:50) 여기 긍휼이라 번역된 단어는 <엘레오스>로서 구원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이 머무는 자리가 어디일까요? 마리아는 두려워하는 자에게 임한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아의 이 말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했을 때, 그녀에게는 큰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그때 가브리엘은 < 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눅 1:30)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온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모친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이고, 이것은 큰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임할 때 마리아는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에게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여기서 두려움과 은혜의 상관관계를 알게 됩니다. 두려워하는 자에게 은혜가 임하고, 은혜가 임할 때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왜 두려워했을까요?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게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나사렛의 평범한 처녀였습니다.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났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 과정을 통해서 마리아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은 두려워하는 자에게 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자부심이 큰 사람들입니다. 그 마음이 교만한 자들입니다. 마리아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51~53절입니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지만, 교만한 자는 흩으십니다. 권세 있다고 자부하는 자는 내리치십니다. 부자를 빈손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 즉 비천하고 주리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답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다면 모르지만,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비록 좀 배웠고, 가졌고, 힘이 있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버러지와 같을 뿐임을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상실했습니다. 겁 없이 설쳐댑니다. 교단 일을 하는 이들은 대개 어느 정도 목회나 삶에 성공한 분들이라 여겨지는데, 그래서인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냄새나는 거래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보기 민망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목에 힘을 주는 이들은 목회자, 중직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연약함 때문에 떠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강한 자보다 차라리 약한 자, 높은 자보다 차라리 낮은 자, 가진 자보다 차라리 부족한 자가 되는 게 낫습니다.
예수님께서 낮은 세상에 오신 이유, 십자가에까지 낮아지신 이유는 낮은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높은 자에게 은혜를 주시려 했다면 굳이 그렇게 낮은 자리에까지 오지 않으셔도 좋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인 십자가에까지 내려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높이에 있던 행악자가 긍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합시다. 두려워하는 자에게 긍휼이 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