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지 않은 총선이 어디 있을까만 이번 4·10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였다. 야권은 임기가 3년도 더 남은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정권심판론을 내세웠고 여당은 일하는 대통령을 만들자고 야당심판론과 정권안정론을 폈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야당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국민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고 하지만 보수정치를 지지하는 사람들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허나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이번 총선이 남긴 숙제를 몇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꾸는 노력을 더 하여야 한다. 비록 정책방향이 옳아도 접근 방법이 국민에게 부담스러우면 외면당한다. 그동안 안보외교 및 노동 개혁 등 국민들이 지지한 정책도 적지 않지만 대통령의 소통 부재와 독선의 이미지가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다. 조속히 당정의 인적쇄신과 더불어 야당과의 대화와 소통을 해나가야 한다.
192석 거대 야당군이 된 민주당과 야당들도 막중한 책무를 느껴야 한다. 국회의 입법 지원 없이 윤석열 대통령 혼자 임기 3년을 끌어 갈 수가 없다. 야당의 도움이 절실하다. 민주당과 야당들도 협조할 것은 해야 한다. 더 이상 국회를 특정인의 방탄과 특검 등 정쟁으로 일삼고 대통령이 거부할 수밖에 없는 법안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부쳐서는 안된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은 수용하고 협치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그렇다면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어선 안 된다. 작은 흠집이나 도덕적 흠결도 안 된다는 게 국민의 눈높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범죄혐의자나 재판 중인 범법자가 당을 만들고 총선에 출마해 국민의 대표가 되어버린 황당한 일이 실제로 나타났다. 불법 부동산 투기꾼 및 윤리적으로 파탄난 자들까지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가 이런 자들의 놀이터요 도피처가 되어버린 셈이다.
여기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한 역할을 했다. 비례대표제는 원래 지역구에 출마하기 어려운 소외층이나 전문가층을 배려한 전국구로 출발하였는데, 지난 정부 때 느닷없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들어 제대로 검증도 안 된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문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앞으로 이 잘못된 선거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 거대 다수당이 된 민주당과 야권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쉽사리 고치지는 않겠지만, 선거전에 이미 종래의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여야간 논의도 있었으니 이제 국민들이 나서서 다음 선거전에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압박하여야 한다.
국가적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모두 벅차고 중요한 과제다. 지금 세계는 국가이익을 둘러싼 무한 경쟁이 진행중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하거나 단순 덧셈과 뺄셈으로는 대응이 안 된다. 예컨대 돈 풀어 경제 살리는 표퓰리즘이나 “셰셰(謝謝)” 하면서 외교하고, 평화 타령하면서 안보를 대충 다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온 바탕은 우리 국민의 땀과 피와 눈물이었다. 이 좋은 나라를 결코 후퇴시킬 수는 없다. 국가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은 국민의 노력과 역량이지만 그것을 극대화 하여 경제, 사회, 복지, 외교 등 제도와 정책으로 끌어 가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번에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이 정치의 사명을 잘 인식하여 대한민국을 글로벌 중심국가로 탄탄하게 이끌어 주기를 강하게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