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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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한 저명한 신학자 구두인(具斗仁, Charles Goodwin, 1913-1997) 박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려신학대학에 입학한 이후인 1972년 혹은 1973년경으로 생각된다. 부산의 보수동 고서점에서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이 발간하는 ‘신학논단’ 7집(1962. 10)을 샀는데, 거기에 실린 구두인의 “희랍어와 한국어 발음의 비교”라는 글을 대하게 되었다. 그 때는 희랍어를 공부하기 이전이었음으로 글 내용을 지금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국인들은 서양인들보다 더 정확하게 희랍어 본래대로 발음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짧은 논문이었지만 영어는 말할 것도 없지만 희랍어와 나전어 한글과 중국어까지 비교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연유로 ‘신학논단’ 11집(1972. 6)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히랍어 어려운 말”(γλώσσαι ελληνικαι)이라는 한글로 쓴 논문이 게재되어 있었는데 희랍어 몇몇 단어를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원의를 바르게 전달하는가를 취급하고 있었다. 이런 글을 대하면서 구두인 교수는 고전어에 박식한 학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가 예일대학교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수득했다는 사실과 그가 성공회 신부로서 선교사 신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비록 그는 신약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그는 실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였다. 신약은 말할 것도 없지만 히브리어나 구약에도 박식했고 교회사나 예전, 교리 등에도, 심지어는 교회음악에도 깊은 식견을 지닌 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구두인 교수를 늘 마음에 두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미국 코넷티컷주 하트포트에서 1913년 5월 5일 출생했다. 1931년 성 바울신학교를 거쳐 1935년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하여 옥스퍼드에서 수학했다. 1939년에는 미국켐브리지성공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사제서품을 받고 10여 년 간 성공회 신부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60년 예일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한성공회의 요청으로 1960년 9월 교수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에서 교수하는 한편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1979년까지 연세대학교 신학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고전어, 성경원전 강독, 신약학 등을 가르쳤다. 이 기간 중에 구약 강좌가 필요하면 구약을 가르치고, 교회 음악 교수가 없을 때는 교회 음악도 가르치는 만능 교수로 활동했다고 한다. 은퇴한 이후에는 성공회 부산교구 휘하의 부산 수영의 성공회 수양관에서 생활했다. 성공회 성직자는 결혼할 수 있으나 그는 독신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가 부산에 살고 있기에 대학자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장로교인인 내가 성공회 신부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든 중 교회연합회가 주최한 세미나가 성공회수양관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행사에 참석하면서 구두인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1984년 혹은 1985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성공회수양관은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1072-55번지에 있었는데 주변에 밭이 있었고 비교적 한적한 곳이었다. 수양과 건물에 주택이 붙어 있었는데 그곳이 구두인 신부의 거처이자 서제였다. 당시 관리인에게 면담을 청했는데 마침 구 신부님이 미천한 신학도를 기꺼이 만나 주었다. 키도 크고 건장했으나 어깨가 완전히 굽어 있었다. 일생동안 공부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신으로 살다보니 그의 이웃이란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다. 그는 고양이 한 마리와 가족처럼 살고 있었다. 그날 구두인 박사는 나를 맞아주었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나는 그에게 서재(書齋)를 한번 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기꺼이 나를 서재로 안내했다. 책으로 가득찬 한 벽면 책장 위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커틴을 제치자 값진 고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16세기 간행된 책들이 있었고 성공회 관련 고문헌들, 그리고 한국에서의 성공회 시원에 관한 문서들, 곧 영국인 요한(Charles John Corfe) 주교의 문서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그가 프랑스 파리의 외방전교회 샤를르 달레 신부(par Ch. Dallet)가 쓴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를 가리키며 이 책을 아느냐고 물었다. 1980년 역간된 안응렬 최석우 신부의 역본은 알고 있었지만 1874년의 불어판 원본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3권으로 구성된 호화 양장본이었다. 내가 소장하고 싶은 그의 고서들이 나를 유혹했다. 이런 고서들 외에도 금영 측우기(測雨器)는 아니었으나 측우대(測雨臺) 같은 것도 있었다. 책장을 커튼으로 가린 것은 햇빛에 책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7년 전인 1990년 ‘성공회의 특징’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 추천의 글을 쓴 이가 대천덕 신부였다. 이 책에 쓴 구두인 신부의 한마디는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고 있다. “내가 속한 교파를 가장 좋은 교파로 여기면서도 다른 교파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하고, 다른 교파의 가르침을 경청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혹은 우리는 “다른 교파에 대해 존경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등이다.

  그는 1997년 6월 28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84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의 보물 같은 책의 행방이었다. 후에 들으니 성공회대학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 생을 살았던 성공회수양관은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 이곳에는 송원파크빌라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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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신학자 구두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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