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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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교회의 부흥과 위대한 복음의 역사를 노래하거나 말할 때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 “백두에서 한라까지”다. 한국교회 부흥의 시작은 1907년 평양을 기점으로 전국의 교회로 확산된 평양대부흥운동이다. 평양 장대현교회에 연합집회로 모였던 선교사들과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온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역사가 나타났다. 당시 런던타임즈는 “마치 밖으로부터 뭔가 물밀듯 밀려드는 강력한 힘의 임재에 압도당한 듯했다.”고 보도했다. 선교사, 지도자, 성도들의 변화와 헌신으로 부흥의 불길과 성령의 파도는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 운동은 한국교회에 경건하고 건전한 부흥 운동의 모델이 되었고, 나아가 한국교회를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흥을 말할 때 그 역사의 현장과 시작점이 된 평양과 1907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지나간 한국교회는 위기의 상황을 넘어 소멸의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증가했고, 예배 의식은 약화 되었고, 순종과 헌신과 봉사의 열정은 식어졌다. 세상과 국가 공동체는 할 수만 있으면 쾌락과 방종 그리고 타락과 무신론의 문화를 파종하기에 여념이 없다. 황금만능과 자기 중심주의적인 삶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잠식하고 있으며, 철저하게 현실에 안주한 의식은 다음세대를 점점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어른 세대는 복음화율이 20%, 젊은 세대는 10%, 청소년 세대는 미전도종족인 3~5%, 유치원은 1~2%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산에 소재한 1830여 교회 중, 주일 예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가 상당수다. 청년회가 없는 교회가 절반을 상회하고,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가 부지기수다. 교단을 초월해서 신학교는 정원미달이 고정화되고, 젊은 신학생보다는 중년의 신학생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저출산의 문제는 세상보다 교회 안에서 더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반인들의 출산율이 0.74:1이라면 교회 청년들은 0.62:1이다. 이슬람은 자녀가 알라의 축복이라고 교육함으로 한 가정에서 약 8명의 자녀를 출산하고 있다. 이슬람은 자녀 출산을 통해 2050년까지 지구 인구의 절반을 무슬림화 하겠다는 계획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열패감과 좌절 그리고 절망과 탄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을 허비해야 할까? 아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자리에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야 한다. 깨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의 자리로 함께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은 정말로 위대하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했고, 엘리야는 비가 없던 땅에 비를 오게 했고, 바울은 성경과 교회를 남겼고,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9월 8일 해운대성령대집회는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웃교회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교회 차례다. 그러므로 부산에 성령의 파도와 바람과 물결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나와 우리 교회를 위함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만 있었으면 멸망하지 않았다. 도시 전체와 의인 10명이 대등의 관계에 있었다. 하나님은 오늘, 부산과 한국교회를 살릴 의인을 찾으신다. 그 찾으시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모두가 홍보대사, 후원자, 함께 백사장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개교회의 사역은 그다음 주에 해도 된다. 해운대성령대집회는 10년만에 이루어지는 연합집회이며 공동체적 기도의 현장이다. 이를 통해 반드시 부산과 한국교회에 성령의 역사, 부흥의 바람, 부산대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부흥의 표현과 성령 임재의 역사성이 바뀌기를 바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평양까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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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평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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