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끝나는 것과 계속되는 것
창세기 48장 21~22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이란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해당합니다. 죄가 들어온 후 사람의 모든 것은 유 한함에 갇혔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일시적인 것입니다.
언젠가 요양병원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어느 교회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연세가 구순이신 장로님은 움직이지 못하고, 의식도 미약한 가운데 다른 이들의 손에 인생을 맡긴 채 누워 있었습니다. 상당한 재력가에 박사님이라고 하는 장로님에게는 남은 게 별로 없었습니다. 절반 정도 남은 베지밀 박스에, 기저귀 두어 세트, 그분 이름이 적힌 빨대가 달린 플라스틱 물병, 갑 티슈 서너 개가 전부였습니다. 그분이 입은 환자복은 나중에 누군가 다른 이의 몸을 가져 주겠지요. 간호사님과 돌보미들은 그분이 신체가 커서 씻기고 옷을 입히는 게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은 몸조차 남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게 우리의 상황인데, 영원이 우리에게 가당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유한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과 연결되도록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현세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향해 사는 삶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원을 향하여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두개파는 사독의 후예로서 성전을 장악한 제사장의 무리를 지칭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내세나 부활을 부인하고, 현세만 인정했습니다. 현세만 인정하다 보니, 그들은 현세에서 성공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후손이 없이 죽은 한 남자의 아내가 남편의 여섯 동생과 모두 결혼한 후 다 죽었으니, 부활이 있다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한 이유도 이들이 부활과 내세를 부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사두개파처럼 사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봅니다. 현세에 매달려 삽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 영원한 가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이들은 대개 돈과 지위와 건강과 쾌락만 추구합니다. 한국교회를 병들게 한 기복주의 신앙 역시 이런 맥락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영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애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영원한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야곱은 130세에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간 이유는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흉년이 두 번째 덮쳤을 때, 야곱의 모든 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십 칠 년을 살았습니다. 본문은 야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요셉에게 남긴 말씀입니다. 그는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은 죽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계속 이어가실 일, 즉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을 주실 일을 언급했습니다. 자신은 유한한지만, 하나님의 일은 계속 이어질 것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한합니다. 우리 인생은 머지않아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당신의 일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하나님의 영원하신 일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는 일, 선한 일을 위해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일, 우리 유한한 시간을 사랑에 쏟는 일은 매우 소중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하면서 그 교회 역사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초대 목사님에 이어 여러분의 목사님들이 이어 교회를 섬겼고, 모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건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 교회를 통해 예배를 받으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여전합니다. 우리도 영원히 이어질 일에 우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