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문학] 이 시대의 멘토가 쓴 신앙고백록
김기석의 '고백의 언어들'
김기석의 <고백의 언어들>
문학적 깊이와 삶의 열정을 겸비한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 시, 문학,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글쓰기로 지금까지 40여권의 저서와 10여권의 번역서를 낸 저자가 43년의 목회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교의 초청으로 진행한 다섯 번의 강의를 이 책에 담았다. -나의 인생, 나의 하나님-이란 부제처럼 목회자의 깊은 신학적 통찰과 올곧은 삶을 느낄 수 있다. 그의 깊은 묵상과 폭넓은 사유의 울림은 멘토를 잃고 위기에 처한 한국기독교에 각성과 함께 위로를 준다. 370여 쪽에 각주만 해도 100여 개에 달하는 이 고백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그의 방대한 지식에 대한 경탄과 함께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며,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이야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 저자소개 ∥ 김기석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청파교회 전도사, 이화여대 교목, 청파교회 부목사를 거쳐 1997년부터 2024년 4월까지 27년간 청파교회를 담임했으며, 지난 4월, 43년간의 목회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한 후 신간을 준비 중이다. 방송을 비롯한 여러 매체, 온라인 설교 등을 통하여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 저서∥ 말씀 등불 밟히고 《하나님의 숨을 기다리며》, 《당신의 친구는 안녕한가》, 《일상 순례자》, 《사랑의 느림에 기대어》, 《김기석 목사의 청년편지》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삶이 메시지다》 김기석 / 포이에마 / 2010
《흔들리며 걷는 길》 김기석 / 포이에마 / 2014
《오래 된 새 길》 김기석 / 포이에마 / 2012
기독교인문학 〈55〉
이 시대의 멘토가 쓴 신앙고백록
- 숙성된 묵상과 사유의 열매 -
인생의 곤경이 다가올 때
“하나님은 늘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말랑말랑하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고통과 시련이 새로운 인식의 문이 되기도 합니다. 시련과 고통까지도 자기 삶으로 품어 안을 때 삶이 무르익기 시작합니다.”
43년 목회자의 고별메시지
김길구 저자의 책은 전에 다뤄본 적이 있었죠. 유럽의 교회, 수도원, 미술관들을 순례한 기행문 《흔들리며 걷는 길》인데요. 확인해 보니 벌써 10년 전이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마지막 사역지인 청파교회의 27년 목회를 올 4월 마무리하고 은퇴하셨지요. 독자들은 자유로운 가운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더 좋은 글들을 기대하는 눈치예요. 저자는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현호 독서와 글쓰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잖아요. 좋은 글감은 많은 독서와 깊은 사고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요즘도 새벽 3시부터 저녁까지 6시간 정도 독서를 한다니 한 달에 6권 정도 읽는 셈이죠. 물론 책의 난이도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곧 신간도 준비 중이고요.
류지원 이 책은 작년 여름, 캐나다의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의 초청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향하여’란 주제의 5일간의 벤쿠버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인데요, 그동안 저자의 목회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의 신학과 목회를 정리한 고별메시지라고 할 수 있어요.
김길구 이 책이 43년 동안 사역한 노목사님의 고별메시지이니 저자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죠. 이 책의 출판에 대하여 기독교계는 물론 연합뉴스, TV조선을 비롯한 많은 매체에 보도되어 교계 원로가 사라진 이 시대에 그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김현호 그동안 기독교 목회자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하고는 결이 다른 목사님의 캐릭터를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직주의와 강퍅한 교리주의자가 아닌 탈권위적이고, 포용적이며, 부드러운 인격자, 낮은 곳을 지향하되 폭력적이지 않고, 지적이되 따뜻한 그런 이미지가 있지요. 글이나 표정에서…
류지원 이 강좌를 주최한 벤쿠버기독교세계관 대학원의 최종원교수는 서평에서 저자를 한국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로 ‘진실하고 신실하고자 달음질해 온 고독한 구도자의 삶과 신앙이 문학의 언어로 고백 되어 우리 앞에 다가왔다’고 격찬한 대목이 와닿았습니다.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김길구 첫 장에서 저자는 우주선 보이저 1호가 해왕성 궤도 밖에서 찍은 칼 세이건이 명명한 ‘창백한 푸른점’에 불과한 지구를 언급하면서 무한한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을 대비시키며, 창조의 신비와 인간의 한계, 불안과 방황이 상수인 삶과 영원에 대한 그리움이 공존하는 인간은 그 자체가 수수께끼라고 합니다.
김현호 교목시절 물리 선생님과 나눈 얘기를 소개하는데, 그 선생님이 대학생 시절 1년 동안 공부하니 ‘세상에 설명 못 할 물리적 현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졸업할 즈음에는 ‘내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일화와 함께 43년간의 목회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저자에게 “누가 하나님에 대하여 다 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옷자락을 슬쩍 보았을 뿐이라며, 이 말은 겸양의 이야기가 아니라 솔직한 고백이라”고 하면서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자기 확신에 찬 설교자를 경계’ 하라고 했는데 음미해 볼 대목입니다.
김길구 이 장에서 ‘모호함’ambiguity과 흔들림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데 확고한 믿음을 강조하는 풍토에서 부정적 의미가 담긴 ‘분명하지 않다’, ‘흐릿하다’는 뜻이 담긴 이 단어를 굳이 쓰는 이유는 무엇이죠?
류지원 욥기의 예에서 보듯 인생은 모호하기 그지없지 않나요? 저자는 오규원의 시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인식이라는 게 모호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유의 여백이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며, 의심하게나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도종환의 시도 있잖아요.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흔들림은 경직된 것이 아닌 유연한 것으로 어쩌면 회복의 탄력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 안에서 태어나다
김길구 이 장은 고난과 낯선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하는 한계상황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럴 때 내가 의지하고 있던 세계가 흔들립니다. 이러한 고난에 직면하여 신 앞에 단독자로 섰을 때, 신앙인은 자기 속으로 누군가를 끌어들여서 없애버리려 하지 말고, 낯선 세계에 직면하여 끊임없이 결단하며 나아가라고 권면합니다.
류지원 전설적인 희곡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를 언급하는 부분이 재미있어요.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권태를 이기려고 쓸데없는 말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문득 무대 한켠에 서 있는 나무를 보며 아무 생각도 없이 ‘우리 심심한데 저기 목이나 매 볼까?’ 하고 있는데, 살려달라는 외침에 놀라서 보니 연극 1막에 잠시 등장했던 포조였어요. 처음에는 우리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한 외침이니 우리가 안 해도 누군가 살려 주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방금 이 소리는 인류 전체에게 한 말이라고 무시하다 생각해 보니 그 자리에는 자기들뿐임을 깨닫고는 ‘싫건 좋건 그 인류가 우리들이야, 이번 한 번만이라도 의젓하게 인간이란 종족의 대표가 되어 보자는 말이야’ 라는 대목에서 저자는 인간의 삶의 무의미성과 고통하는 ‘타자의 얼굴’에 반응하는 인간상이 작가 베케트가 기다리던 ‘고도’ - 그 희망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작가는 이 각본과 기독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다
김현호 호렙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 고통받는 것을 보았고,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며 그래서 내가 개입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네가 나의 손발이 되어 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을 개정개역본으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로 소개하여 존재론적 의미로 해석되게 번역되었다며, ‘나는 나다’라는 원래의 의미는 ‘나는 나이고자 하는 나다’란 뜻을 내포한 관계론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인 자유 속에서 이루어가시는 분으로, 사건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거예요.
나의 인생 나의 하나님
류지원 하이데거가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고 ‘존재와 시간’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죽음이라는 실제적인 상황에서 삶에 관해 성찰하게 됩니다. 하이데거가 이런 상황을 들기 위해 ‘하기누스의 우화’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생명을 가진 존재인 ‘쿠라’는 그 말뜻이 ‘근심’, ‘불안’이다. 인생은 살아있는 동안 늘 근심과 불안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예시를 들고 있다.
김현호 현대 사회는 이런 불안의 상황이 가중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지요. 나희덕 시인의 ‘기능주의자’의 시에서 보듯이 욕망의 전장에서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내면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나만이 살아남기 위한 남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기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은 국제적인 재난이기도 하고 결국 인간이 욕망을 자제하지 않고 소비와 경제발전에 매몰된 사고와 많은 상업적 기업들과 무분별한 개인소비성향으로 인한 결과물이 되돌아오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김길구 오늘 다룬 《고백의 언어》들 류의 책들은 소개하기가 참 까다로워요. 소주제들도 많고, 문장 하나하나에 문학적 표현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동서를 아우르는 고전류의 참고도서들의 인용문이 많아 전체적인 맥락을 이어가며 한 주제로 요약하기가 쉽지 않아 주마간산, 수박 겉핥기식의 맥락 없는 단편적 소개로 이 책의 매력과 감동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계절에 우리의 신앙을 한 단계 높여줄 거장의 고백록에 흠뻑 빠져보시죠.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