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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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생어무위(福生於無爲) 이환생어다욕(而患生於多慾)’이라는 말이 있다. ‘전한(前漢)’시대(BC 200-8)의 학자 ‘한영(韓嬰)’의 저술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표현으로 ‘복은 욕심을 내지 않는 것에서 생겨나고, 염려는 욕심이 많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정말 인간이 욕심을 내지 않고, 모든 것에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대부분 행복하기를 갈망한다.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유엔산하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에서는 매년 140여 국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기초로 행복지수를 산출하여 순위를 발표한다. 2024년에는 10점 만점에 7.741점을 받은 핀란드가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로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는 6.058점으로 52위에 랭크되었다. 2021년에는 5.845점으로 62위, 2022년에는 5.935점으로 59위, 2023년에는 57위였다. 전체적으로 행복 지수가 나아지고 있지만, OECD 국가들 가운데서는 거의 최하위권에 해당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셈이다.

 

사실 ‘행복’이란 매우 주관적인 감정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대 심리학에서 행복은 기본적으로 ‘쾌락’을 의미한다. 이 ‘쾌락’은 개인의 만족감이나 긍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만족스러우면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런 생각을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라고 질문해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얻었을 때’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행복학을 연구하는 연세대 서은국 교수는 내가 즐거움을 느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의 기준이 개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행복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진 대표적인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이성을 통해 인간의 탁월함을 나타냄으로써 인간다움을 추구하고 최고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하면서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과 고통 위에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이 행복을 올바른 삶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행복을 성경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의 만족과 즐거움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행복에 대한 언급보다 평화에 대한 가르침이 압도적이다. 성경은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욕심에서 벗어나 만족하는 삶을 추구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함께 누리는 평화에 주목한다. 평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이레네’이고 히브리어는 ‘샬롬’이다. 신구약 성경은 ‘평화’에 대한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나아가 성경은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peacemaker)’이 되라고 가르친다. 우리 시대의 행복은 개인적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관계적이다. 그리스도인은 나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를 살지만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 함께 평화를 누리는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그 평화를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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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종 교수] 그리스도인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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