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새벽시장은 너무 추웠습니다. 어머니를 도와드리러 방학 때면 이따금 새벽에 자갈치시장에 갈 때가 있었습니다. 지나간 겨울들은 왜 그다지 추웠을까요? 발끝이 시리다 못해 감각이 사라지고 귓불이 떨어져나간 건 아닌지 쓰윽 만져볼 때쯤이면 시장 상인들은 커다란 드럼통에 모닥불을 지폈습니다. 따로 부를 필요도 없이, 어느 샌가 하나둘씩 불앞에 모여듭니다. 사위(四圍)를 온통 다 삼켜버릴 기세의 어둠을 하나둘씩 갈라져 나오는 빛들이 살라버리고 ‘따닥따다닥’ 나무 타들어가는 소리가 어둠을 가로지르는 노랫소리처럼 들리면 동태같이 얼어붙은 몸이 녹아들면서 마음도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어둠이 지피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면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언 손과 발을 녹일 수 있는 모닥불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 우리 마음과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모닥불은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본래 잘 쓰이지 않는 글자인 ‘탄’이 요즘같이 많이 언급되기도 처음입니다. 언제나 돌아오기 마련인 ‘성탄(聖誕)’의 계절에 ‘탄핵(彈劾)’이라는 정치적 사건 때문에 곳곳에서 ‘탄성(歎聲)’이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감탄(感歎)’하는 소리들이 있는가 하면 ‘탄식(歎息)’하는 소리들도 적잖습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결의가 이루어진 12월 14일을 전후하여 전자는 주로 여의도 일대에서, 후자는 주로 광화문 일대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헌법 제1조 제1항) 모든 국민에게는 양심의 자유(헌법 제19조)와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헌법 제21조 제1항)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의도든 광화문이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신념을 따라 최선을 다하면 그만입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고 나아가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들을 자제해야 합니다. 무엇이 진리인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리고 후대의 역사가 평가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상호간에 존중하고 관용하며 이해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모두가 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같지 않습니까? 함께 아름답고 성숙하며 발전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탄절을 전후해서 광장마다 사람들로 넘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인파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금번 성탄의 광장들은 탄핵을 둘러싸고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가득 채우리라 예상합니다. 진리가 항상 다수의 편에 서 있다는 역사의 필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의연하게 일어서는 소수가 언제나 진리라는 가설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통계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드러낼 뿐 가치와 평가를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전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성탄전야의 대한민국을 잠간 묘사해 보겠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조사해 발표한 ‘대통령 탄핵 찬성 여부’ 여론조사 결과 찬성은 76.1%, 반대는 21.9%였습니다(중앙일보 12월 11일).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한 조사 결과는 찬성이 73.6%, 반대가 22.2% 나왔습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결과는 찬성이 73.6%, 반대가 24%였다고 합니다(매일경제). 물론 표본조사에 불과합니다만, 이런 통계들은 대체로 70% 넘는 국민이 탄핵을 찬성하고 30% 가까운 국민이 탄핵을 반대한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이런 자료들이 탄핵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정당한 판단은 신과 역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광장에서는 탄성만 울리지 않았습니다. 광장마다 노랫소리가 가득했는데, 광장마다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도 달랐습니다. 여의도 일대에서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빅뱅의 ‘삐딱하게’ 같은 K-팝이 울려 퍼진 반면, 광화문 일대에서는 ‘내 나이가 어때서’나 ‘돌아와요 부산항에’ 같은 노래들이 울려 퍼졌습니다. 광장에서 들어 올린 기물도 달랐는데, 알록달록한 아이돌 응원봉이 여의도 광장을 가득 채운 반면 알록달록한 태극기와 성조기가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여의도 일대는 갑자기 광장의 주축 세력으로 등장한 20대와 30대 여성들을 포함해서 엠지(MZ)세대가 주력이라면, 광화문 일대는 최근 ‘노노(NoNo)족’이라고도 하고 새로운 ‘우파(右派)유튜브족’이라 부를 수도 있는 60대와 70대가 주력입니다. 성탄을 앞두고 여의도 광장에서는 풍자용 캐럴이 불렸다면 광화문 광장에서는 원래 캐럴이 불렸다는 차이도 있네요.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탄핵에 대한 ‘전국담임목사 대상 긴급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67.2%가 찬성이고 28.8%가 반대였습니다(국민일보 12월 12일). 하지만 60대와 70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제 교회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자, 그렇다면, 여의도로 상징되는 새로운 광장세대는 향후 교회로 찾아오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