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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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천왕봉을 한 번 정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천왕봉을 등정할 기회가 있었다. 해발 1653m인 장터목에서 하룻밤 자고 새벽에 천왕봉 1915m를 향해 가서 일출을 보는 코스였다. 천왕봉은 남쪽에서 제일 높은 산이었기 때문에 너무 기대가 되고 설렜다. 마침내 천왕봉 등정이 시작되었다. 가을 지리산은 참 아름다웠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지리산은 가을 풍경을 물씬물씬 자아내며 만추의 정경을 그려주고 있었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가을숲 나무들의 모습이 나의 남은 여생을 연상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잠시 이런 시상에 잠기기도 했다. “초봄부터 그리도 사랑을 속삭이더니 / 가을엔 벌써 늙었다고 수줍음을 타네요 참 아름답게도 늙었어요 / 나는 그래도 늙어가는 그대들이 좋아 / 그대들과 함께 늙고 싶어 / 나는 지리산에 살어리랏다.”
 마침내 장터목에 도착 했다. 1653m 고지를 4시간 동안 오른 것이다.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천왕봉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저녁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몸은 피곤하고 노곤하지만 천왕봉을 정복한다는 게 꿈 같았다. 그렇게 잠을 설치는 중에 산악인 엄홍길님의 말이 생각났다. “산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오르는 것이 아니고 산이 허락해야만 오를 수 있다.”그 분의 말에 의하면 천왕봉이라는 정상이 내게 허락해야 나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찌 산이 내게 허락을 하겠는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엄홍길님의 문학적인 표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겸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높은 산은 자기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허락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서 산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시를 쓸 때 산은 하나님의 품이나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이미지화할 때가 많이 있다.“죄송합니다 / 너무도 오랜만에 와서 / 마음이 때 묻다 보니 / 몸도 함께 때에 묻혀 / 이리도 오랜만에 왔습니다 / 부끄럽습니다 / 쉴 새 없이 전화하고 / 사람 만나느라 / 분주하기만 했던 지난 삶들이 / 경건한 당신의 품 / 출애굽의 세계에 와보니 / 수줍기만 한 마음 / 견딜 수 없네요 /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 처음에 느꼈던 사랑 / 그 초심을 회복하여 / 다시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이렇게 볼 때 산이 허락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단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천왕봉을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침내 새벽에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마침내 천왕봉에 발자국을 찍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일출을 알리는 여명의 빛이 한동안 비취더니 마침내 붉은 태양이 둥근 쟁반의 모습으로 저 동쪽에서 떠올랐다. 차마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신기해서 계속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순간순간 눈을 감으며 새에덴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새에덴 성도들의 가슴에도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아침에 희망차게 떠오르게 하옵소서. 어두운 가슴일수록 더 솟구치는 의지와 희망으로 떠오르게 하옵소서.”
 나의 가슴은 호렙산 부흥회가 연속되었다. 사진을 찍고 산청 쪽으로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길은 정말 힘들었다. 급경사인 돌길인데다가 젊었을 때 눈구덩이에서 너무 오래 무릎을 꿇었던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무릎 꿇을 때 고통스러웠던 십자인대와 그 속 힘줄에 통증이 왔던 것이다. 그럴수록 더 깊이 깨달아졌던 것은 산이 허락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의 은혜로 천왕봉이란 정상을 정복할 수 있었다. 아니, 내 인생의 어떠한 고지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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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산이 허락한 자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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