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1(수)
 

김운성 목사.jpg

세상은 요란하고 살기 힘듭니다.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들이 여전합니다.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일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삭개오는 여리고성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여리고는 집단 거주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성지에서 여리고는 예로부터 매우 큰 성읍이었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틴 해방기구의 수도가 여리고에 있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 업무 책임자로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겉보기 성공과 달리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그는 여리고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직업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벌레 보듯 했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창녀와 같은 수준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심지어 거지도 세리가 주는 돈은 던져버리던 때였습니다. 삭개오는 돈은 있었으나, 외로웠습니다. 그의 가슴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소문은 놀라웠습니다. 그분은 소외된 사람, 버려진 사람들의 친구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제자 중에는 자신처럼 세리였던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율법적이고 살벌한 유대 사회에 세리까지 끌어안으시는 그런 분이 있다니!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더욱 흥분시켰던 것은 바로 그 예수님께서 자신이 사는 여리고에 오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급하게 뛰어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뵈옵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본문 3절은 그의 좌절감을 말해줍니다. 길에 나갔을 때 그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를 가로막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의 키가 작다는 것과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 문제는 삭개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키가 작은 것도 생래적으로 주어진 것이었고, 사람이 많은 것도 그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삭개오처럼 우리도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목표를 가졌지만, 가로막는 것들이 있습니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세상을 원망합니다. 신세타령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태도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탄식만 하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삭개오의 선택에 유념해야 합니다. 그는 키가 작은 것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것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 순간 키가 작은 문제와 사람이 많은 문제가 동시에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돌무화과나무 패러다임입니다.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제3의 길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나무가 본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갑자기 돋아난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있었고, 삭개오는 그것을 발견하여 올라갔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찾아보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나무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과 발견해도 그 위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발견하는 눈과 그 위에 오르는 용기를 갖기를 원합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나무일까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예수님이 돌무화과나무처럼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분은 본래부터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늘 곁에 계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오르십시오. 그 순간 모든 장애가 극복될 것이고, 목표에 도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올라가면 부러질 나무에는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늘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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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나무는 원래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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