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6(월)
 

홍석진 목사.jpg

지난 3월 발생한 ‘산청산불’은 장장 213시간 34분 만에 불길이 겨우 잡혔습니다. 2022년 3월의 ‘울진산불’에 이어 두 번째 긴 시간이라고 합니다. 대형 산불이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환경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산불보다 더 무서운 무언가가 우리를 삼키려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 마지막 장에서 ‘세계를 태울 만큼 큰 불’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에크피로시스(ecpyrosis)”를 사용하여 “지나친 믿음이 지옥을 불러들인다”라고 썼습니다. 미국의 역사·경제학자 닐 하우는 『제4의 대전환』(한국경제신문, 2024)에서 바로 이 개념을 차용하여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이 일종의 “에크피로시스”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시민 행동이 최고조에 달하고, 외부공격자로 판단되는 모든 세력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이 일어날 위험이 가장 크며, 내부적 정치 혁명이나 내전이 일어날 위험 역시 가장 크다.”(357 p.)

그런데 닐 하우가 진단한 미국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대체로 미국의 블루존(민주당 지역)은 더 부유하고 더 건강하며, 교육 수준이 더 높고 전문직이 많고 이동성이 더 크며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하고 인종이 더 다양하다. 미국의 레드존(공화당 지역)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많고 이웃과 더 친밀하며 자선 모임이 더 많고 더 가족 중심적이며 이동성이 적고 더 폭력적이고 덜 관료적이며 세금을 덜 낸다. 블루존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창의적이고 첨단기술에 뛰어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고, 레드존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근면하고 성실하다고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345 p.) 여기 나타난 블루(blue)와 레드(red)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도 아주 잘 맞습니다. 대체로 진보는 파랑을, 보수는 빨강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두 가지 색상이 지금 이 나라를 온통 물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표방하는 정치색이 사람을 비롯한 방송과 모든 영역들을 집어삼키는 일종의 “에크피로시스”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문제는 앞서 인용한 에코가 제기한 ‘지나친 믿음’ 곧 ‘광신(狂信)’입니다. 이는 기존 종교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믿음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이미 언론인 강철주는 1966년부터 10년 동안 중국 대륙을 삼켜버렸던 ‘문화대혁명’ 역시 “지나친 믿음이 불러들인 지옥” 곧 ‘광란의 에크피로시스’의 일종이 아닐까 하고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시사저널 2004. 7. 6). 홍위병들의 극좌주의적 광신으로 말미암아 혁명은 “한 밤중에 각목을 들고 들이닥친 제자들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되었고, 이어서 “학대와 억압 그리고 고문과 낙인”으로 사람들을 삼켰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민주주의 헌정 질서 파괴, 그리고 브레이크 없는 전쟁과 학살!”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최근 이스라엘 정권을 바라보며 종교적 광신과 결합한 극우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벌어지는 끔찍한 광경이라면서 제시한 칼럼 제목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던 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미국국회의사당에 난입하던 몇 년 전 장면도 유사하지요. 당시 사상 초유의 행동 바탕에도 종교적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권이 출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인 이념이 우리를 집어삼키지는 않을까 근심하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광신적 사상이 많은 이들을 집어삼키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전쟁의 화마(火魔)가 문자 그대로 이 나라를 집어삼키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범세계적인 경제 전쟁이 우리를 통째로 삼켜버리지는 않을까, 가슴앓이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라면 신적 섭리와 경륜의 신뢰 안에서 그래도 희망을 품고 희망을 전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헬무트 틸리케의 『하나님의 침묵』에서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해를 힘차게 맞이하자. 우리는 미래형 인간이다. 우리가 지나갈 음침한 골짜기마다 산이 우뚝 솟아 있어 우리의 도움은 거기서 온다. 이미 산꼭대기는 장차 임할 영광으로 벌겋게 물들어 있다. 벼락은 번쩍이고 소리만 요란할 뿐 결코 우리를 때리지(삼키지) 못한다. 우리가 밟을 길은 이미 평평하게 다져져 있다. 바람과 폭풍의 행로를 정하시는 그분이 길을 닦아 두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놀라게 하실 일이 어디서나 기다리고 있다. 보리라 약속된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6장, ‘불투명한 미래의 문턱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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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무엇이 우리를 삼키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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