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구색만으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 18장 18절

몇 해 전 어려서 자라난 동네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넓게 여겨졌던 길이 지금은 좁은 뒷골목일 뿐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한창 축구가 유행하고 있었고, 주 상대는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 한국 축구는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축구 열기는 꼬마인 우리에게도 퍼져서 뒷골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을 찼습니다. 6학년 동호 형이 중심이었고, 나머지는 5학년과 6학년이 섞여 있었습니다.
한번은 뒷골목 축구에 만족할 수 없어서 한참 떨어진 구로초등학교에 갔습니다. 한쪽에서 공을 차고 있노라니까 유니폼을 멋지게 입은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구로초등학교 축구 선수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부러운 눈으로 정식 선수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수들은 운동장 가운데서, 우리는 구석의 남은 운동장에서 공을 찼습니다. 그런데 축구팀 선생님이 우리를 부르더니, 연습 경기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뒷골목에서 공을 찬 우리가 정식 선수들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2대 0으로 이겼습니다. 축구팀 선생님이 어이가 없었는지, 또 오라고 했고, 그 다음 주 토요일에는 다른 학교 축구팀들까지 와서 토너먼트 경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동호 형에게 축구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정도입니다.
구로초등학교 축구팀은 왜 동네 아이들에게 졌을까요? 유니폼에, 축구화를 멋지게 신고, 코치 선생님도 계시고, 포지션별로 선수도 다 있는데, 왜 졌을까요? 그 이유는 진짜 선수다운 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격을 막아낼 수비 선수가 없고, 골을 넣을 선수가 없습니다. 열한 명이 뛰고 있는데, 모두 있으나 마나입니다. 구색은 갖추었지만, 실력은 없었습니다. 흔히 폼만 잡는다고 하지요.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 갖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사장은 율법을 가르쳤고, 지혜로운 자들은 책략을 베풀었고, 선지자들은 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다 갖추었기에, 더 이상의 선지자는 필요 없다고 여기면서,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습니다. 예레미야 18장 18절이 이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
당시 유다 백성에게는 진리가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타락하여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했고, 지혜로운 자들의 책략은 제 눈에 안경이었고, 선지자들은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 양 포장했습니다. 예레미야만이 참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만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시대에 여호사밧과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치는 전쟁을 하러 가기 전에 선지자들에게 묻던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백여 명의 선지자가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그때 <미가야>만 패배와 왕의 죽음을 예언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가야의 예언처럼 아합왕은 부상했고, 결국 죽었습니다.
수가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진리가 중요합니다. 진리는 다수결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짓이 다수를 이루고 있으면 어리석은 군중은 눈이 어두워서 진리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목회자 중에는 한국교회에 유행하는 분위기와 성도들이 좋아하는 분위기에 맞추어야 하는지, 목회자의 신앙 양심에 따라 해야 하는지를 갈등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신앙 양심을 따라 행하면, 교회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홀로 있더라도 진리를 따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투브 등의 조회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말씀이 진리인지가 중요합니다. 조회수에 속지 말고, 진리를 분별하는 <영들 분별하는 은사>를 가져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진리 위에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