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1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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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오늘날의 현실과 오버랩되는 장면을 많이 만납니다. 구약의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부름 받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듣고 거부감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쳤던 장면도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니느웨라면 당시 가장 악한 도시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가장 잔악하고 교만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요나는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하느니 차라리 당시 땅 끝으로 여겨지던 다시스로 배를 타고 떠나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요나가 풍랑 속으로 뛰어들게 하시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사흘간 그 속에서 요나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 다음 장면이 요나서 3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장면을 만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있다가 살아나온 요나의 복음 선포를 들은 니느웨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베옷을 입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니느웨 왕은 스스로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회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요나 스스로도 포기했던 니느웨 사람들의 이 놀라운 회개와 변화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니느웨는 어디인가?“

 

요나가 그 마음속에서 완전히 배제했던, 혐오했던 지역이 니느웨입니다. 그런데 요나만 그럴까요? 우리도 특정한 지역, 아니면 특정한 부류, 특정한 계층,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안 변해요"라고 하는, "그들은 구제 불능이에요"라고 하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거는 하나님이 아니라 누가 해도 안 돼요." 라는 부정적인 감정과 거부감 말입니다.

여러분, 한국말에 참 험한 말이 많습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면서요. 그럼 누굴 거둘 겁니까? 제가 자녀 때 몰랐는데 부모가 돼 보니까 제일 좋은 부모가 누군지 알게 되었습니다. 속아 주는 부모입니다. 속아 주는 부모가 제일 좋은 부모입니다. 친구는 어떤 친구가 제일 좋은 친구입니까? 참아 주는 친구입니다. 견뎌 주는 친구에요. 단점이 보이죠, 못난 게 보이죠. 그런데 그거 하나하나 지적하는 친구들 아무도 안 남아 있어요. 그런데 참아주고 견뎌 주는 친구들만 옆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부부는 어떤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일까요? 져 주는 사람입니다. 져 주는 남편과 아내가 제일 훌륭한 배우자에요. 이러한 성품은 어디서 올까요?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포용과 긍휼이 결국 좋은 부모,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를 만든느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저들은 안 돼", "이런 사람은 안 돼", "이런 부류들은 안 돼"라고 외치며 거부하는 우리만의 ‘니느웨’를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은 그 니느웨를 깨어 버리는 분입니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을 용납하시고 속아 주세요. 성도들끼리는 참아 주세요. 부부는 서로 져 주세요. 우리는 쉽게 "다시는 안 봐! 절대 안 봐!" 하지만 아마 곧 또 보게 될걸요? 모르긴 해도 여러분 평생 보게 될걸요? 가족이니까요. 형제요 이웃이니까요. 그렇다면, 평생 봐야 한다면 우리가 속아주고 참아주고 져 줘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디모데전서 2장 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분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누가 누구에게 썼나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썼어요. 디모데라고 하는 사람은 목회자인데 이 목회자의 마음에 너무 많은 미움이 있는 거예요. 목회를 해 보니까 정말 너무 사람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너무 커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마음을 선배 목회자인 바울이 달래주면서 "디모데야, 참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셔. 그리고 그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셔. 그러니까 한 사람도 포기하지 말고, 한 사람도 안 된다고 말하지 말고, 끝까지 감싸 안아. 그게 목회야"라고 말하는 책이 바로 디모데전서입니다.

여러분, 목회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가정생활도 똑같지 않습니까? 부부생활도 똑같지 않습니까? 사회생활 역시 똑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누구까지는 되고 누구부터는 안 돼"라고 말하는 그 순간 우리는 선을 긋는 것이고, 그 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 선은 내가 하나님이 되는 교만 아닙니까? 여러분, 그 니느웨는 과연 누가 정한 것입니까? 오늘 니느웨가 뒤집어져 변화되어 하나님을 따르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우리가 판단하고 우리가 정하는 그 니느웨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사람은 여간해서는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천천히 물들어 갑니다. 우리 교사들이 다음세대들을 하나님과 같은 포용력을 가지고 안아줄 때 그들은 천천히 우리의 사랑에 물들어 갈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한 번 더 자녀들을 기대해 주고 그들에게 가능성을 부여하고 믿어줄 때 우리의 자녀들은 그 신뢰에 복된 열매로 보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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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요나 선지자가 교사, 부모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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