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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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교수가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하버드대학 정치철학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를 읽었다. 이 책에서 센델 교수는 공정하다고 믿는 능력주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다. 즉 능력주의에 따라 공정이라는 인간 생활의 가장 규범적인 원칙이 변질되었다는 비판인데, ‘진정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의하여 성공이 결정된다고 하면서 그것이 공정한 기준이 되어버리는데, 바로 그것이 공정에 대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겉보기에는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평들을 심화시키고 자존감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경고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주의 깊게 돌아보아야 할 경고로 마음에 담게 된 글이다.

교회 지도자 세미나 강사로 섬길 기회가 있었다. 주제는 <통감(通鑑)의 리더십>이었다. 각론으로 아모스 5:24의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의 주제를 정리하면서 역사를 거울로 보는 혜안(慧眼)과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영안(靈眼), 그리고 작은 자들을 존중하는 심안(心眼)으로 성경적 관점의 공정을 강조했다. 오전 강의를 마무리하고 커피 타임에 공정에 대한 탁상공론이 전개되었다. 둘러앉은 대부분의 목사님 장로님들의 공정에 대한 이해는 단어가 의미하는 규범적 이해를 벗어나 상황적 이해로 귀결되었다. 즉 공정도 힘의 균형 윤리로 적용되는 오늘의 현실을 모두가 아파했다.

사전적 공정(公正)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였다. 대다수의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그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이며 국정운영의 근본 가치였다. 그의 공정은 단순한 평등이 아니라 기회·과정·결과의 균형 있는 정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실제 국정 수행의 과정에서는 그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이는 이후 정치적 논쟁에 중심이 되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국정 수행 핵심 가치를 ‘공정과 상식’이라 명명했다. 즉 공정은 국정철학의 중심축이었다. 문재인 전 정부가 기회의 공정을 강조했다면 윤석열 전 정부는 과정의 공정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내로남불 청산과 정치적 편향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국정운영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나 결과는 규범적 공정이 아닌 상황적 공정으로 빛을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철학 핵심은 정책과 공정의 연결이다. 지방정부에서부터 ‘기본 시리즈’ 정책을 통해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공정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도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와 구조를 바꾸는 것에 방점이 있다. 그 핵심 정책은 ‘불법과 편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이지만 실제는 자신의 재판절차를 중단하게 되는 불법과 편법이 관통하는 상황적 공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fairness)은 일반적으로 규칙의 일관된 적용, 차별 없는 대우, 그리고 합리적인 판단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 정치 지도자들의 국정 수행이나 정치철학에서 공정이 빠지지 않지만, 실제는 공정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자신의 정치 정당성 확보의 수단이 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즉 공정이 권력의 언어로 변질되어 사용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비민주적인 행태를 일삼고, 그러면서 그 행태를 공정이라고 정의하는 상황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적이며,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바보가 아닌 우리 국민들은 심히 가슴 아파한다. 공정의 규범적 윤리적 가치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행보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자신에게는 공정이지만 상대편에는 불공정이 되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둔갑하고 있다. 결국 공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4.19와 5.16과, 5.18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고, 제도적 정비와 시민적 합의를 통해 차근차근 구현되어야 할 오늘의 과제가 된다.

은퇴 후 700여 교회를 방문하면서 말씀 사역을 하고 있다. 크고 작은 교회 지도자들과 만나면서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의 목회와 경영은 공정한가?”라는 질문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작금의 정치 현장에서 행해지는 공정의 변질처럼 교회의 지도자들마저도 공정과 정의가 자신들의 현실적 정당성 확보의 수단이 되고 교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결국 규범적으로 접근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적으로 접근되고 그 과정은 힘의 균형 윤리로 결정되는 것이 무섭다. 불의도 이기면 의가 되고, 정의도 지면 불의가 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 성도들은 공정과 상식의 틀에서 갈등하고 방황한다. 소위 능력주의자들은 교회가 부흥된 것이 자신의 능력과 수고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하면서 과정의 불공정이 있었음에도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면 엄청난 재력가가 많은 헌금을 한다거나, 사회적 신분이 특출한 사람이 영향력을 끼친다거나 하면 그로 인한 다양한 불공정도 공정으로 얼버무려지고 그런 공정에 대한 착각으로 교회 공동체는 갈등과 방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개혁교회 지도자들 역시 정치 지도자들과 다를 바 없이 공정을 자신들의 교회 정치에 대한 정당성 확보와 이해관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마이클 샌델’ 교수가 경고한 것처럼 공정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성경은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고 명령한다. 교회는 인간 사회의 공정 개념을 넘어서, 하나님의 성품인 정의(justice)와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 곧 바실레이아(Kingdom of God)로서의 에클레시아(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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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공정이라는 착각, 교회는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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