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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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 측이 미국 대통령을 위해 ‘마가’라는 글자를 새긴 모자를 선물했다 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사자가 상당히 좋아했다는 후문이 있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이를 위해 ‘마가복음’을 생각하며 준비했을까요? 아니면 21세기 미국을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과 ‘구글’과 ‘아마존’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그 ‘마가’를 염두에 두었을까요? 둘 다 아닙니다. 주지하다시피 ‘마가’란 트럼프 대통령이 줄기차게 주창하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입니다. 이 구호 덕분인지 트럼프는 작년 선거에서 예상과 달리 압승을 거두고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재집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법론들은 동시에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습니다. 미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을 공공연하게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관세부과, 이민 제한과 추방 정책, 외교 네트워크의 축소와 원조 삭감, 각종 국제기구(세계보건기구, 유네스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연이은 탈퇴, 기후변화와 관련된 파리협정 이행거부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세계리더십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CAP).

‘굴기’라는 말은 어떻습니까? ‘대국굴기’의 줄임말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요? 2006년 11월 한 달 동안 중국중앙방송의 경제채널(CCTV-2)에서 방영된 역사다큐멘터리의 제목입니다만, 중국의 지배자 시진핑(習近平)이 강조해서 더 유명해진 말이니까요.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되면서 당을, 중앙군사위원회를 접수하면서 군권을, 그리고 국가주석에 오르면서 정부를 장악하여 중국의 일인자로 등극합니다. 이 정도로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사례는 모택동과 등소평밖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진핑은 그들과도 다릅니다. 모택동은 ‘초영간미’(超英赶美) 즉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과 겨루겠다’를, 등소평은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칼을 칼집에 감추고 은인자중한다’를 내세웠지만, 시진핑은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주장하면서 공공연하게 G-1의 자리를 놓고 미국과 패권 다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성장률이 꺾이고 실업률이 급증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대미경제전쟁의 여파만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연임제한조항마저 없애면서 영구집권을 획책하며 자체적으로도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일인독재정치에 필연적으로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라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그런 두 세력이 지난 십여 년을 싸워왔습니다. 결국 지금 세상은 ‘마가굴기전’을 목격하고 있는 셈입니다. 바둑에 ‘아생연후에 살타’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야 남의 돌도 죽일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트럼프도 시진핑도 이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벌써 중국에서는 군부가 시진핑 세력들을 숙청하고 당에서도 원로파와 태자당이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했다지요? 트럼프도 그가 시행한 일방적인 조치들에 대한 법원과 행정부의 반발은 물론이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보복과 후환이 두려워서 말을 하지 못할 뿐이지 두 강대국의 횡포에 질려갑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지구촌 시민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재앙과 빈발하는 전쟁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이밖에도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천부인권과 언론의 자유는 포기하거나 양보불가한 소중한 가치들입니다. 그런데도 살벌한 권력의지를 앞세워서 인권을 탄압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패권 다툼이나 하고 있다면 안팎으로 누군들 좋아할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를 자처하는 한 정치평론가가 최근 굵직한 말 하나를 남겼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를 비판하기를 그런 모자나 바치면서 아양을 떨고 다 퍼주기 식으로 굴욕적인 모습 아니냐는 사람들을 향해 날린 ‘그럴 정신이 있으면 차라리 트럼프를 비판하라!’는 일갈입니다. 사실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벌써부터 국제법상의 ‘형평과 선’(ex aequo et bono)이라는 선(線)을 넘었습니다. 시진핑의 대국주의도 말할 나위가 없으니, ‘그럴 정신이 있으면 차라리 시진핑을 비판하라!’도 추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짐 콜린스의 표현을 살짝 빌어 두 분에게 감히 당부한다면, 부디 좋은 나라를 거쳐서 위대한 나라를 꿈꾸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가도 좋고 굴기도 좋지만, 부디 그것이 ‘마가주의’나 ‘굴기주의’가 되지 않게끔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당하게 그리고 용기있게 비판해야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우리 안에도 ‘마가’나 ‘굴기’가 이념처럼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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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마가(MAGA)와 굴기(崛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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