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07(금)
 

홍석진 목사.jpg

지금 세간의 화제는 뭐니 해도 ‘정치와 종교’라고 하겠습니다. 통일교와 신천지 같은 유사종교에서 불교와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정종유착(政宗癒着) 관련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종교단체의 수장들이 압수수색을 받거나 심지어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종교탄압(宗敎彈壓)이라는 말들이 안팎으로 터져 나오는 양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종유착을 강조하는 측도 종교탄압을 강조하는 측도 똑같이 내세우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정교분리’입니다.

물론 양자가 이제야 새삼스러운 관계가 된 것은 아닙니다. 고대로부터 역사 속에서 둘은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아 왔습니다. 그 결과 일종의 법적 결과물을 양산했는데, 현대 헌법들에 그 흔적과 자취를 또렷하게 남겼습니다. “의회는 종교를 세우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미국수정헌법 1조, 1897년). 이를 두고 ‘정교분리’(the Saparation of Church and State)의 원조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이 원리를 제대로 명문화한 국가는 독일입니다. 바이마르공화국헌법(1919)은 일찍이 “국교의 부존재와 종교단체의 설립”이라는 표제 하에 “국교는 존재하지 아니한다.”(137조 1항)라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우리 헌법도 그 영향을 받아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라는 조항을 두었는데, 거기다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문구를 더했습니다(헌법 20조 1, 2항). 왜 그랬을까요?

미국의 수정헌법과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이 국교(國敎)를 부인하는 배경에는 종교개혁에 이어진 종교탄압 및 종교전쟁이라는 역사적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헌법태동기의 한국인들에게는 약간은 낯설었던 현상입니다. 따라서 한국헌법의 정교분리선언은 남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원래 정교분리가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에 치중했다면, 우리는 ‘종교의 국가적 중립성’을 동일하게 강조한다고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제1회 국회속본회의 속기록 23호 참고). 그런데 ‘정치→종교’보다 ‘종교→정치’의 방향성에는 다음과 같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종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이를 종교인의 모든 정치적 발언과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든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성정엽,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의 의미”, 「법학논고」, 경북대 로스쿨(2020))

실제로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교회에는 정교분리를 이유로 제국주의의 불법부당한 지배에 굴종하는 모습을 합리화했던 사적(史蹟)이 존재합니다. 일부 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이유로 정치적 사건에 일제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그 결과 개인적인 각성과 부흥에만 천착하는 한국교회의 비정치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비판하는 견해들도 있습니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1988), 최영근, “한국기독교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 「신학사상」, 157호(2012)).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단체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공적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민의를 호도하거나, 종교인이 국가적인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사적으로 개입하여 대의를 그르치는 일에 관여한다든지, 교회의 강단에서 설교의 본질을 유월하는 정치적 발언을 자의적으로 무제한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인이나 종교단체의 정치적 발언과 행위는 종교적 신앙(religious belief)뿐만 아니라 공적 이성(public reason)에도 근거해야 합니다. 정치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래야만 비종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수긍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정교분리는 ‘정치→종교’의 반작용에 해당했지요. 영국의 청교도 탄압과 프랑스의 위그노 학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오히려 ‘종교→정치’의 반작용에 가깝습니다. 정치가 종교를 불법적이고 불의하게 대한다면 마땅히 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정치를 불법적이고 불의하게 대한다면 마찬가지로 정치영역과 시민사회로부터 저항을 초래합니다. 성경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 하고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라”(딤전 2:2)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불법불의한 권세나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에게까지 그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동시에 스스로도 불법불의나 권한남용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민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데(딤전 2:4) 스스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더욱 경계해야 할 줄 믿습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사칼럼]정교분리와 종교탄압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