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3(금)
 

홍석진 목사.png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먼저 ‘나비스’가 에스파를 소개하는 거예요. 그러면 ‘블랙 맘바’가 ‘광야’로 설정된 무대를 휘감고, 에스파가 등장하는 거죠.”(매일경제, 2022. 10. 7) 아시아 뮤직 어워드(MAMA)에서 걸그룹 에스파가 등장하던 장면을 소개하는 요즘 세대(Z~α)의 설명입니다(광야4.0). 이들에게 “광야”란 어떤 의미일까요? 놀랍게도 일종의 ‘세계관’을 가리킵니다. “무규칙, 무정형의 영역이자 무한의 에너지가 흐르는 곳”입니다. 이런 세계관 위에서 사회의 갈등과 화합이나 심지어 인간과 인공지능 등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과감하고 위험부담이 가득한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수용과 거부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까요. 아무튼 사뭇 놀라운 “광야”의 새로운 지적 소비입니다.

“광야”를 두고 몇 개의 세대를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광야1.0세대’가 있습니다. 이 세대는 “광야”라 하면 먼저 ‘이육사’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로 시작해서 “내 여기 다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로 끝나는 시(詩) 말입니다. 본명은 이원록이고 이육사는 수인(囚人)번호로 경북 예안 출생(1904)의 독립운동지사였던 지은이는 베이징 소재 일본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1944). 그가 노래하던 “광야”가 가지는 상징성은 오랜 세월 동안 세대를 관통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에게는 조금은 낯선 모습입니다. 그래도 역사적 광야로 길이 남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광야2.0세대’를 생각합니다. 이들은 “광야”라 하면 먼저 이런 노랫말을 떠올립니다.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으로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가사는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도와 만주를 넘나들며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1980년대에 치솟은 민주화의 시대적 열망을 가득 품었던 많은 젊은이들의 심장을 미친 듯이 울려대는 절규와 함성의 이미지가 바로 “광야”였습니다. 안치환과 고(故)김광석이 불렀던 노래는 이제 그 시대적 사명을 다한 듯합니다. 어디에서도 희미하게 서린 모습이나 어렴풋이 들리는 흔적을 보고 보고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민주와 자유와 정의의 깃발이 나부끼는 한 그와 함께 울려퍼지던 광야의 노래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광야3.0세대’는 뜻밖에도 한 찬양(CCM)을 통해 등장합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히즈윌, 2013). 주지하다시피 “광야”는 성경에서 ‘말씀과 함께’(미·드바르)라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누구 하나 곁에 없고 오직 고독과 위험과 불안만 가득한 곳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말씀이신 분이 함께 하는 공간이라니, 그러나 가르치기는 쉽지 않았던 이 광야의 개념을 이처럼 서정적이고 압도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청년들을 넘어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나아가 세상 사람들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광야의 노래입니다.

개인적으로 다시 광야에 섰습니다. 광야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외롭고 쓸쓸하며, 굶주림과 날선 추위와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간 불러왔던 광야들(1.0-3.0)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습니다. 광야란 요즘 세대(광야4.0)가 잘 표현한대로 ‘나의 본질적인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까? 신약성경은 “광야”(마 4:1, 요 1:23 등)를 “한적한 곳”(막 1:35, 6:31, 요 11:54)이나 “빈 들”(마 14:15, 눅 9:12)이라고 번역할 때가 많습니다. 전자는 기도와 안식이 필요한 곳을, 후자는 침묵과 기적이 존재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그곳을 불현듯 방문하시고 도와주시며 인도하시는 광야의 주인을 만나는 현장입니다. 다시 그 광야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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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광야1.0에서 광야4.0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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